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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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금이야 비피더스균이니 락토 균이니 해도 대부분이 대충「아 몸에 좋은 균」정도의 생각은 하지만 야쿠르트가 국내에 첫선을 보였을 때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한국 야쿠르트 사는 69년 국내자본과 일본야쿠르트사의 합작법인으로 이뤄진 회사로 전서울대 축산학과 교수였던 윤쾌병씨(초대사장)의 주도로 설립됐다.
그는 세계각지에서 건강식품으로 선풍을 끌고있던 요구르트를 국내에 도입시킨다는 생각에서 교수직까지 포기했다.
요구르트의 대명사처럼 돼버린「야쿠르트」라는 명칭은 일본야쿠르트사가 여러 유산균 중 「락토바실로스 카세이시로다」라는 균을 발견, 특허와 함께 이를 이용한 발효유를「야쿠르트」라는 상표로 등록시킨 게 따른 것이다. 71년8월 마침내 첫 판매에 들어갔으나 실적은 극히 저조해 많아야 하루판매량이8천 병에 불과했다(현재는 6백50만병).
요구르트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어『유산균이 도대체 뭐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세균이 어떻게 몸에 좋을 수 있느냐』며 사기꾼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초 모집한 2백 명의 주부판매사원을 대상으로 밤늦게까지 유산균에 대한 교육은 물론『아이들 이름을 외워라』『조금씩이라도 집주인과 잡담해라』『항상 웃어라』는 야쿠르트사 특유의 친절교육을 시작했다. 『친척한테는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야쿠르트아줌마에게는 문을 열어준다』는 방문판매업계의 신화도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7O년대 후반부터 유명식품회사들이 너나할것 없이 엄청난 광고물량을 앞세워 요구르트생산에 뛰어들었지만 야쿠르트아줌마들이 닦아놓은 탄탄한 판매량의 벽에 부닥치게 마련이었고 지금까지도 유산균식품업계의 최고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판매에서도 끈끈한 인정이 최고라는 교훈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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