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깊이 생각해보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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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응답자의 71.9%가 가족으로부터 폭행당한 적이 있다는 한국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는 가정내의 폭력에 대해 생각을 가다듬어볼만한 좋은 자료다.
이번 조사결과가 아니더라도 우리들 대부분은 너나 없이 성장과정이나 결혼생활을 통해 가족으로부터 맞거나 혹은 가족을 때려본 경험을 갖고있다. 국내외의 조사결과를 보면 이런 경험은 학력이나 경제형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래서 학자들 가운데는 폭력은 인간 본성의 하나인 공격성에서 유래되는 것이어서 그것을 근절시킬 방법은 없는 것이고 오직 인위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가정내 폭력의 심각성은 그것이 가족간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가정밖 사회폭력의 심리적 근원이 되며 유전처럼 대물림도 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맞아본 사람이 남을 때리게 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때리는 것이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부모가 자식을,교사가 학생을 교육적 목적으로 때리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확실히 이런 경우에는 한마디로 어느쪽이 옳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결국은 개별적·구체적 사안에 따라 결론을 내릴 문제다.
그러나 심리학자나 정신분석가들의 일치된 결론은 때리지 않고 교육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때릴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뒤에 찬찬히 분석해 보면 흔히들 「사랑의 매」였다고 주장하는 것들도 상당수는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했던 것인데 순간적 감정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라는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일단 최소한 가족에게는 폭력을 쓰지 않도록 하겠다고 각자가 다짐하는 것이 좋지않을까.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라서 그런 다짐이 깨뜨려지는 경우도 많겠지만 평소에 다짐을 해두는 것과 안하는 것과의 차이는 생각보다는 클 것이다.
폭력은 어느사회에나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너무도 쉽사리 행사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토론이나 기껏해야 언쟁으로 그칠 일도 걸핏하면 주먹다짐으로 번지곤 하는 것이 우리사회 분위기다.
공격성이 인간의 본성이라 하지만 문화적 힘에 의해 얼마든지 억제될 수 있다. 쉽게 주먹이 나오는 것은 우리들이 그렇게 길러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정폭력 가운데서도 「매맞는 아내」의 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여성단체들이 문제점과 피난처의 마련 등 국가적 대책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일들이 특수한 가정의 일이나 남의 문제만은 아니다. 가족이 모이는 시간에 토론의 주제로 삼아보면 뜻밖의 큰 수확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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