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일본인을 모른다/이석구 동경특파원(특파원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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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반일감정 우월­열등의식서 교차/냉정한 자세로 극일의 길 깨우쳐야
20일자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에 이런 글이 실렸다.
『한국의 반일감정은 과거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한일간의 격차에 따른 한국인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일본이 과거에 대해 충분히 사죄한다고 한국의 반일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문제는 명분일 뿐이고 실상은 현재의 양국간 격차가 반일감정의 근본원인이다.』
한국에서 특파원을 지내 한국을 소상히 잘 알고 있다는 니혼게이자이 신문 국제1부차장 스즈오키 다카부미(영치고사)의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일본을 모델로 열심히 노력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일본을 질투의 대상으로 삼게 됐다고 강조했다.
일본 자민당을 흉내내 3당통합을 해봤으나 실패했고 필사적으로 노력해 괜찮은 자동차나 가전품을 만들었다 싶으면 일본은 이미 저만큼 앞서가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이 정치적 기반강화를 위해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다음번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일본이 독일처럼 사죄한다고 해도 한국에서의 반일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스즈오키는 밝혔다.
이처럼 장황하게 스즈오키의 글을 소개하는 것은 혹시 우리에게 그같은 점이 없는가 한번쯤 살펴보기 위해서다. 밖에 있는 사람이 우리보다 더욱 객관적으로 우리 자신을 관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이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보다 앞서가고 우리가 가까운 시일내에 일본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면에서 스즈오키의 글은 맞는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에 대해 사과해도 한국에서의 반일감정은 여전할까. 그럴는지도 모른다. 일본이 사죄했다 해도 앞서가는 자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에서 반일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그전에 일본은 먼저 충분히 사죄부터 하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한국은 그가 주장하는 만큼 일본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지 않다. 일본인들이 늘 지적하는 것처럼 한국의 일반인들은 항상 과거 일본에 한자 등 문화를 전수해준 사실을 들먹이며 우쭐댄다. 그리고 현재의 일본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곧잘 내려다 본다. 현재 한국과 일본이 어느만큼 큰 국력차이가 있는지 모두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실제 일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문가연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일본어의 한자만을 읽고 대충 뜻을 알 수 있으므로 일본어는 쉽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진짜 한국의 문제는 대체로 일본에 대한 열등감보다 오히려 일본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우습게 보는 점이다.
그러면 일본의 일반 시민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에 관심있는 소수의 일본인들을 빼면 사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무관심하다. 우리의 눈에는 일본이 항상 들어오고 있으나 일본인의 눈에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수많은 외국중의 하나일 뿐이다. 학교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죄의식도 별로 없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했고 일본이 아니라도 한국은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일본의 우파 지식인들은 정신대에 대해서도 「그것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배상문제는 65년도의 한일 기본조약에서 모두 해결됐다고 한다.
가정 주부들은 정신대 문제에 대해 사과는 하지만 교과서에 넣어 어린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반대한다. 또 일왕과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수차 사죄했는데 더이상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한다.
이처럼 한일간에는 큰 의식차가 있다. 한일간의 갈등은 이같은 의식의 차에서 비롯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잘못 알고 있다.
한국은 우월감과 열등감의 교차속에서 상대를 보고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본인들은 대체로 한국에 무관심하고 잘모르며 과거문제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를 똑바로 보고 한일간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때다. 열등감에서 반일감정이 비롯된다고 하는 소리를 비난하기에 앞서 왜 그같은 소리가 나오게 됐는지 우리 자신부터 살펴봐야 한다.
과거 우리가 일본에 한자를 가르쳐 줬다며 여전히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는 것은 열등의식의 발로는 아닐까 생각해 봄직 하다.
과거에 대한 사죄를 고집하기보다는 식민지가 됐던 우리를 자책하고 무엇이 진정으로 극일하는 길인지 깨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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