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식의 해외주재관 필요없다/최철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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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급공무원들의 가장 큰 일은 역시 돈과 사람 다루는 문제다. 유능·무능을 판정하는 가늠자는 여전히 큰 덩치의 예산을 얼마나 잘따냈느냐,부하직원들의 자리는 많이 만들었느냐에 달려있다. 영역확장 의욕이 앞서야 하고 한 조직에서 나가고 들어오는 부하들의 자리를 요령있게 마련해 놓아야 훌륭한 장관이요 차관이며,또 명사장이라는 평을 듣는다. 6공들어 각 부처의 새 업무가 개발되고 조직이 점차 비대해지면서 자리문제가 매우 심각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5년새 26%나 늘어
새로운 자리를 설치하는 명분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5공때는 국영기업체의 경영효율화를 위한답시고 이사장 제도를 도입해 놓고 실제는 골치아픈 정계 및 군출신 인사들의 쉼터로 십분 활용했다. 지금도 정치권이 이 자리를 나눠먹기식으로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가는 모두 훤히 알고 있다. 현정권에 들어서는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과장자리,국장자리가 많이도 생겼다. 한쪽에서는 작은 정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다른쪽에서는 업무폭주를 이유로 조직을 확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해외주재관이다.
지난 87년에는 16개 부처에서 1백57명의 해외주재관을 내보냈지만 현재 인원은 22개 부처에서 무려 1백98명에 이르고 있다. 26%나 증원되었다. 이와 별도로 같은기간에 외무부는 동구권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수립 등으로 공관 인력이 6백61명에서 7백59명으로 증가했다. 관계부처들은 해외주재원이 이처럼 대폭 늘어난데 대해 모두 나름대로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주요 경제부처가 오래전부터 해외주재원을 내보내고 있는데 이어 최근 몇년동안에는 통일원이 독일 통일정책의 진척과정을 눈여겨 보기 위해,국세청은 국제조세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보사부는 의약업무 등 때문에,특허청은 지적 재산권 문제 등으로 주재원들을 파견했다는 설명이다.
○득없이 추가증원 경쟁
그런데다 이제는 체신부·교통부 등이 업무상 불가피성을 들어 2∼3명씩 신규파견을 서두르고 법무부·재무부·상공부·농림수산부 등이 추가 증원경쟁에 나서는 등 해외주재관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서울시가 자매결연 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파리·도쿄 등 3개 외국도시에 주재관을 파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 해외공관이 외국 도시행정에 전문지식이 없고 정보의 신속전달에도 무관심하기 때문에 서울시 관계자가 해외에서 직접 체험을 통한 업무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서울시를 뒤따를 것이다. 이런식이라면 기타의 모든 부서도 제각기 독단적인 해외업무를 개발하고 세과시에 들어갈지 모른다. 해외에 장기 주재하는 공무원들의 업무영역에 대한 총괄조정과 해외정보의 수집,분석 및 전달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예산낭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독일은 19세기 중엽부터 해외주재원의 활용도를 최대한으로 높여왔던 나라로 꼽힌다. 산업혁명에 앞섰던 영국을 이기기 위해 재외공관이 보다 적극적인 경제정보 수집에 나섰고 특히 상무관제도를 제일 먼저 도입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첨병으로 삼았다. 무엇보다도 밖에서 수집된 정보가 본국 정부의 관계부서와 기업들에 전달되는 정보서비스 활동이 독일을 보다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다. 이에 비해 영국의 해외주재원들은 나태했으며 본국의 인력관리도 엉망이었다.
19세기 후반들어 영국이 경제정보 전략의 약자가 되고 독일이 오히려 강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양국의 해외주재원 정책에 크게 영향받은 것이다.
○인사적체 해소용 곤란
우리나라 해외주재관에게 기껏해야 현지 매스컴 보도내용 요약이나 관광안내만을 맡기려 한다면 차라리 현지인을 직접 고용하는게 낫다. 주재관이 체득한 정보가 소속부서 한군데만 사장되고 또 보다 가공된 정보로도 축적되지 못할바에야 아예 인원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주재관 자리가 더 이상 인사적제 해소용이 돼서는 안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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