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위원회는 「통과」위원회/이기준 과학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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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동통신사업자 최종선정결과가 발표되자 특정업체에 특혜를 준다거나 사전 낙점같은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정부관계자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특혜시비가 꼬리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런 의혹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시원하게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통신위원회는 20일 아침 신규사업자 최종선정을 위한 심의를 불과 40∼50분만에 해치워 어떤 심의를 어떻게 했는지 어이가 없으며 그 설립목적과 기능을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체신부가 이날 새벽 2시까지 철야작업으로 작성한 최종심사 결과를 심의할 통신위원회가 소집된 것도 오전 8시로 위원들은 오자마자 서둘러 이를 통과시켰다. 관계전문가 1백60명이 15∼20일씩 철야작업을 통해 작성해놓은 최종선정 결과는 약 2백30쪽으로 요약돼 있어 이를 읽어보는데만도 40∼50분 정도가 족히 걸릴 것은 뻔한 일이다. 이를 고작 위원 8명이 그 짧은 시간에 심의까지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이런 현상은 지난 1차 심사결과 발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심의과정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위원들 거의 모두가 묵묵부답이다. 심지어 발표당일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위원중 한사람은 이름조차 밝히길 끝내 거부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통신위원회는 정부가 사업을 합법적으로 추진하는데 필요한 들러리 구실밖에 못하는 「통과위원회」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통신위원회란 정부가 정보통신산업 및 서비스의 독점체제에서 경쟁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지난 91년 8월 전기통신기본법 개정법률안을 통해 정부기구도,민간기구도 아닌 중재역할을 위해 설치하게된 기구다.
통신위원회의 기능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객관성있는 신규사업자 선정에 대한 심의 및 허가와 사업자간 분쟁조정,이용자의 권익보호 강화 등이다. 또 중요정책 수립·시행시 전문가의 객관적 의견수렴과 광범위한 여론반영도 역할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큰 관심사가 됐던 이번 제2이동통신 사업자선정과 같은 중대사에서 통신위원회가 보여준 미지근한 태도는 앞으로의 역할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같이 짧은 시간내에 충분한 심의가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되면 위원장은 마땅히 심의와 선정 자체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며 위원 모두가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또 이용자의 권익보호를 위한다면 심의과정도 밀실에서만 할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해야 전국민의 의혹을 한줌이라도 풀어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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