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 부당 처분 소송 한 번으로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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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도권의 장례업자 이모(43세)씨는 유명 의료시설 옆에 장례식장 신축을 계획했다. 그러나 관할 구청은 이씨의 건축 신고를 네 번이나 거부했다. 이유도 "건축 심의위원회서 반대했다""교육환경이 저해된다"며 매번 달라졌다. 이씨는 행정소송(거부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내 1년여 만에 이겼다. 그러나 구청은 또 새로운 이유를 들어 신청을 반려했다.

이씨는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고 반대하자 구청이 눈치를 보는 것"이라며 "또 다른 소송을 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이르면 2009년부터 행정기관의 부당한 처분에 대해 민원인이 법원에 여러 번 소송을 낼 필요가 없어진다. 행정소송을 맡은 법원이 모든 요건을 고려해 해당 행정기관에 민원인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의무이행소송'이 새로 도입되는 것이다.

법무부는 24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행정소송법 개정시안을 발표했다. 1984년 행정소송법이 만들어진 뒤 23년 만에 전면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관련 부처 의견조회→입법예고→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올해 정기국회에 개정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시행은 2009년이 목표다.

장례업자 이씨의 경우 법원이 해당 지역의 건축조례를 종합 검토해 "건축허가를 내주라"고 판결하면 관할 구청이 이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그동안 민원인은 행정기관의 처분에 대해 취소 소송이나 무효확인 소송만 낼 수 있었다.

행소법 개정 시안에는 막대한 손해가 예상될 때 행정기관의 행정처분이 이뤄지기 전에 중지를 요청하는 '예방적 금지 소송'제도도 포함됐다.

예컨대 집 주변에서 행정기관이 공사를 벌여 재산권 침해가 발생할 소지가 클 경우 소송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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