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자세 이대로 좋은가(성병욱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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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며칠전 광복절기념 한국현대사 강연회후 역사학회 회원들의 만찬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의 한국 침략사에 관한 신문보도가 화제에 올라 한일관계가 어떠해야 하느냐에 대한 즉석토론으로 이어졌다.
한 재미교수는 이런 의견을 제기했다.
밖에서 보면 한국의 언론과 지도층은 일본을 비판하는데만 관심이 있을뿐 일본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실제 양국 관계는 어떤가. 일본으로부터 기술·경제면에서 협력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대통령 이하 외교·경제책임자들이 일본의 카운터파트를 상대로 협력을 구하고 있지 않은가.
○서로 반일·혐한 자극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도 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 양국관계를 개선해 보다 적극적으로 경제·기술면의 협력을 위해 노력하든지,민족적 자손심이란 차원에서 도움받을 생각을 말고 과거에 대한 책임추궁을 보다 철저히 하든지 둘중 하나를 택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같이 양국민의 반일·혐한 감정을 고취하면서 동시에 일본의 협력을 구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도 않고,가능하지도 않다고 본다.
몇몇 한국신문의 일본문제에 대한 보도태도를 보면 너무 반일 일변도다. 항일 민족감정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상호협력 해야 할 측면도 적게나마 부각시켜야 되지 않는가.
이런 재미교수의 문제제기에 대해 수긍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반론도 나왔다.
우리에게 과거사를 물고 늘어져 국민의 반일감정을 부추긴다고 하는데 그렇게 된데는 일본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가 원인이다. 독일처럼 과거 자기나라의 잘못을 분명히 시인,사과하지 않고 얼버무리거나 회피하려드니 자연히 따지고 추궁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오히려 우리쪽의 자료축적이나 연구가 부족해 보다 철저하게 책임을 추궁하지 못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대로 근거자료도 갖추지 못한채 의욕만 앞서 헛손질만 하다 빈축을 산적도 없지 않았고,그런 점은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더불어 살아야할 인방
이렇게 그자리에서 오간 얘기를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한일관계를 보는 엇갈린 시각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의 한일관계는 「최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매우 차가운 상태다. 우리 국민의 대일감정이 특별히 최근에 더 나빠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좋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인들의 대한감정은 확실히 요즘들어 더 나빠진 것 같다. 정신대문제,일왕 허수아비 화형사건,방송드라마의 극중 일왕저격장면,PKO 반대 등이 이런 분위기를 가속화 했다고 한다.
우리는 일본이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부족하다고 보는데,일본인들은 아무리 사과해도 한국인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일 최근 세사에서 일본은 가해자였고 우리는 피해자였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처지가 나은쪽은 일본이다. 그렇다면 일본쪽에서부터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적극성을 보이는게 마땅한 도리다. 그 도리는 다하지 않고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만 싫어 하는 것은 일본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싫든 좋든 한국과 일본은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는 이웃나라란 숙명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더불어 사느냐다. 가까운 이웃으로 흉허물을 잊고 서로 도와주는 「좋은 이웃」으로 살 수도 있다. 좀 피곤하더라도 서로 자존심을 지키며 줄 것 받을 것을 분명히 하면서 「사무적인 이웃」으로 살 수도 있다. 또 바람직하진 않지만 서로 약점을 노려 이익을 취하는 「괴로운 이웃」으로 사는 방식도 있다.
불행히도 그동안의 한일관계는 좋은 이웃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괴로운 이웃이었다. 국교정상화 이후 대일무역 적자 6백61억달러로 나타나는 한국경제의 대일의존은 과거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솔하지 못한 태도와 겹쳐 우리 국민 감정을 괴롭혔다.
○합의 모아 재정립할때
반대로 일본과 문제가 생길때마다 국민감정을 동원해온 우리쪽의 접근방식도 일본쪽을 괴롭혔다고 봐야 한다. 그런 방식은 당장의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상호 국민감정 악화라는 더 큰 부작용을 남겼다.
두나라가 좋은 이웃이 되면 가장 바람직 하나 좋은 이웃과 괴로운 이웃간을 널뛰듯 하기 보다는 당분간 아예 사무적인 이웃으로 사는 것도 한 방법일는지 모른다. 서로 호의를 기대하지 말고 따질 것 따지면서,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기술면에서 일본의 협력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제는 대일관계의 대방향에 대해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아야 할때다. 과거를 뛰어넘어 서로 돕는 「좋은 이웃」을 지향할지,계속 따질 것 따지며 그대신 손벌리지 않는 「사무적 이웃」으로 나아갈지를 정해야 한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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