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물꼬 튼 건 '현장 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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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 보도한 본지 1987년 1월 15일자 지면.

"경찰, 큰일났어…."

1987년 1월 15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서소문에 있던 대검찰청. 한 검찰 간부는 자신의 사무실에 찾아온 본지 신성호 기자(현 논설위원.고려대 겸임교수)에게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 뭔가 심각한 사건이 터졌음을 직감한 신 기자는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다 그런 일이…"라며 대화를 이어갔다. 여기서 '남영동''서울대생' 등의 단초를 잡았다.

이후 1시간 반에 걸쳐 대검찰청과 서울지검을 오가며 관계자 10여 명을 만나 퍼즐을 짜맞추듯 사건의 개요를 완성했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서울대 언어학과 박종○'이 죽었으며, 검찰이 경찰의 가혹행위 여부를 수사 중이란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나머지 인적사항은 당시 서울대 취재를 담당하던 김두우 기자(현 논설위원)가 학적부를 뒤져 확인했다.

본지는 이날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AP.AFP 등 외신은 중앙일보를 인용해 사건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이 사건은 결국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기자의 현장 취재가 민주화의 물꼬를 튼 셈이다. 신 기자는 23일 "현장에서 취재원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었다면 박종철 사건은 묻혀버렸을 것"이라며 "언론탄압이 심했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기자를 사건 현장에서 격리시키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도 정부 기관이 편의대로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시도는 여전하다.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이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압력성 전화를 건 일이 대표적이다. <본지 5월 22일자 12면>

경찰은 한국산업기술평가원이 산자부 공무원의 밥값을 대납해 준 사건을 수사 중이다. 이 같은 사실도 수사가 진행되는 현장에 기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1일 정수일 강남경찰서장이 기자들과 아침식사를 하면서 "청장으로부터 (전화로) 직접 혼났다"고 말한 게 실마리가 됐다. 이후 취재와 해명 요구가 이어지자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사실을 털어놓았다.

정부 브리핑 역시 진실을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해 11월 대대적인 브리핑을 했다. 학부모들이 교육청 연구관 등에게 돈을 주고 자녀를 경진대회에 입상시킨 뒤 특기자 전형을 통해 명문대에 부정입학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조사를 받은 학부모 중에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숨겼다. 다음날 현장취재를 통해 기자들이 이를 확인하자 경찰은 뒤늦게 시인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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