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러시아 갈등 증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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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러시아가 서방세계와 신냉전을 방불케 하는 갈등을 빚고 있다. 영국과는 지난해 11월 런던에서 발생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전직 요원의 독살 사건 때문에, 그리고 미국은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체제 때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연합(EU)과는 인권 문제를 놓고 대립각이 커지고 있다.

BBC방송은 23일 전직 FSB 요원인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독살 사건과 관련, 영국 정부가 안드레이 루고보이 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러시아에 신병 인도를 요청하면서 양국 간에 긴장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루고보이는 리트비넨코가 독성 방사능 물질인 폴로늄 210에 중독되기 불과 몇 시간 전 런던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난 인물이다.

BBC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범죄 수사가 어떠한 외교적 어려움보다 우선돼야 한다며 루고보이 조사를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영국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으로부터 꽁무니를 빼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루보고이의 신병 인도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만일 살인 증거가 명백하다면 러시아 법원에서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양국 간 갈등에 대해 런던 왕실연구소 유리 페도로프 연구원은 "이번 사건은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가 내리막길을 걷는 과정에서 나타난 매우 작은 부분"이라며 더 심각하고 중요한 갈등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신냉전(new cold war)'이라는 표현 대신 '얼어붙은 평화(cold peace)'로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또 미국과 폴란드.체코에 설치 예정인 미사일방어 체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달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 부시 행정부를 독일 히틀러의 '제3제국'에 비유해 격렬하게 비난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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