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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객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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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韓)나라 출신 정국이라는 사람이 이곳저곳을 연결하는 수로 공사를 벌였다. 진(秦) 나라의 국운이 걸린 중대한 역사다. 그러나 이를 의심의 눈으로 지켜보는 진 나라 출신 신하들이 있었다. 다른 나라 사람이 큰 공사를 하는 데는 분명히 나쁜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에서다.

그들은 후에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에게 고자질을 한다. "인력과 재력을 탕진케 해 나라를 기울게 하려는 계책"이라는 것이다. 진시황은 솔깃해한다. 그의 부하들은 진의 조정에서 일을 하는 외국 출신의 다른 대신들에게도 화살을 겨눈다. 정국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의도를 품은 첩자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진시황의 마음은 의심으로 기운다. 급기야 그가 내놓은 것이 '객을 모두 쫓아내라'는 축객령(逐客令)이다. 진 나라 출신이 아닌 모든 외국인 신료들은 보따리를 싸야 할 상황에 빠졌다. 우 나라 백리해, 송 나라 건숙, 진(晋)의 공손지 등 역대 진 왕실을 위해 몸과 머리를 바쳤던 외국 출신 인재들의 공로도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후에 통일 진 제국의 재상에 오른 이사(李斯)는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초 나라 출신인 그는 당시 진 조정의 젊은 벼슬아치에 불과했지만 진시황에게 축객령을 거두라는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린다. 그리고 묻는다. "진 나라 왕궁을 장식하는 곤산의 옥(玉)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후궁에 있는 숱한 미녀들 모두 원래부터 진 나라의 것이었느냐"고.

그 간언의 말미는 이렇게 맺어진다. "태산이 큰 것은 모든 흙을 뿌리치지 않았음이요/ 강과 바다가 깊은 것은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는 것이다. 진시황은 결국 그의 간언을 받아들여 축객령을 거둔다. 그리고 찬란한 중국 최초 통일 왕조의 설립자가 된다.

객(客)이란 결국 나와 다른 남, 즉 이기(異己)다. 지도자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라는 흥성과 쇠망의 길로 나뉜다. 나와 다른 것을 모두 배척한다면 용렬함이다. 국가를 융성으로 이끌 수 없다.

한국적 언론 상황의 특성을 무시하고 기자실을 마구 거둬 내는 대통령의 심성을 지켜보면서 2200여 년 전의 축객령을 떠올린다. 코드로 일관해 그 밖의 사람과 의견을 무시하는 태도는 이제 심각한 폐해를 낳기에 이르렀다. 그는 결국 코드에 맞지 않는 것을 모두 배척하는 권력자다. 축객의 대통령. 그에게 '축객령(逐客領)'의 별호를 붙인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