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언론자유 뿌리 뽑겠다는 건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란 것을 확정했다. 정부 부처별로 마련된 브리핑룸을 8월부터 정부 중앙청사.과천청사.대전청사 세 곳의 합동브리핑센터로 통폐합한다는 내용이다. 브리핑 내용을 실시간 동영상으로 전달하는 전자브리핑 시스템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무회의가 의결한 것은 '지원'이나 '선진화'방안이 아니다. 언론의 취재.감시 기능을 원천 봉쇄해 국민의 알 권리를 가로막음으로써 언론자유 수준을 과거 독재 시대로 후퇴시키는 조치에 다름 아니다. 악명 높은 1980년의 언론 통폐합이 기사 생산지인 언론기관을 물리적으로 난도질했다면, 이번 조치는 기사 소스와 유통 경로를 교묘히 옥죄어 정보를 통제하려는 꼼수다. 선진국 제도를 자의적으로 골라 짜깁기해 놓고 '글로벌 스탠더드' 운운하지 말라. 오죽하면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전 언론기관과 여야 정당, 대선 예비 후보들까지 비판하고 나섰겠는가. 임기 막판까지 집요하게 언론 통제를 노리는 노무현 정부의 행태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무리수를 감행하는 배경에 연말 대선에서의 유.불리 계산이 깔려 있다는 의구심이 이는 것도 당연하다.

이 정부 사람들은 그간 비판적인 신문들에 대해 '독극물'이니 '불량식품'이니 막말을 해 왔다. 대통령 자신도 지난 1월 "몇몇 기자가 기자실에 딱 죽치고 앉아 기사 흐름을 주도하고 담합"한다고 사실과도 다른 불만을 토해 냈다. 결국 취임 직후부터 "우리는 나쁜 언론 환경에서 일한다"거나 "일부 언론의 시샘과 박해에서 우리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빗나간 대(對)언론관과 아집이 '선진화 방안'이란 희한한 조치로 구체화됐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그동안 개방형 브리핑제라는 것을 도입하고, 핵심 조항이 위헌으로 판정난 신문법을 만들고, 국민 세금을 써서 '신문 구독 불편 사례 수기'를 공모하는 코미디까지 연출한 것만으로 모자랐다는 말인가.

정부는 이번 조치가 "정보 개방과 확대를 통해 정부와 언론의 투명성을 제고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력과 언론은 본질적으로 긴장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애써 외면한 거짓말이다. 관료들이 면밀히 검토하고 결재를 거쳐 내놓은 관급 기사만 '투명하게 개방'하겠다는 속셈 아닌가. 기자가 개별적으로 취재하는 통로를 막고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를 감추겠다는 의도가 뻔한데도 에둘러서 호도하지 말라. 전자브리핑 시스템이란 것도 정부 입맛에 맞는 정보를 전 언론사에 획일적으로 공급하는 제도 아닌가. 기자가 브리핑 내용에 대해 이 시스템을 통해 질문하고 답변을 받게끔 한다는 것은 대변인의 '붕어빵 답변'이나 받아쓰라는 말과 똑같다. 언론을 우호.비우호로 나누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공무원들을 홍보 요원으로 동원하는가 하면, 일부러 메이저 언론사를 배제하고 군소 언론에 정보를 넘겨 대립을 조장했던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결국 어떤 처지에 빠지고 말았는지 이 정부 사람들도 곰곰이 짚어보기 바란다.

정부의 방안대로라면 앞으로 각 부처에서 밀실 행정이나 부패가 빚어져도 감시하기 힘들게 됐다. 일선 경찰서 기자실이 없어짐에 따라 최일선 수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대국민 인권 침해는 늘어날 것이다.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나도, 공공기관 감사들이 단체로 이과수 폭포를 구경하러 떠나도 일반 국민은 물론 기자들조차 모르고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안 그래도 청와대.국정홍보처의 인터넷 매체 외에도 인사권을 좌지우지하는 TV.라디오 채널을 11개나 갖고 있다. 이들 매체를 통해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허물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무회의가 어제 의결한 조치는 한걸음 더 나아가 헌법 21조가 규정한 언론 자유마저 침해하는 반역사적 행태다.

우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이 정권이 아무리 장벽을 쌓아도 우리는 위축되지 않고 취재의 영역을 더 넓혀 나갈 것이다. 이런 반헌법적 제도는 몇 달 남지 않은 이 정권의 수명이 다할 때 모래성처럼 함께 무너질 것이다. 그 전이라도 우리는 동업 언론사들과 협조하여 위헌 투쟁도 벌여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