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값 다 치른줄 알았는데…”(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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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국에서의 악몽을 뒤로 하고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삶을 그리던 고준규씨(28)는 4일 오후 13년만에 고국땅을 밟았지만 반기는 것은 음산한 경찰서 유치장의 쇠창살이었다.
타국에서 형을 선고받고 수형생활까지 마친 고씨는 이제 또다시 고국에서 법의 처벌을 기다리며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악몽의 기억을 되살려야 했다.
서울에서 살다 중학 3학년이 된 79년 12월 돈벌겠다는 아버지를 따라 고씨는 가족모두와 함께 미 시애틀로 이민을 떠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그곳 밸뷰기술전문대학에 입학,컴퓨터프로그래밍에 몰두하던 84년 12월12일이었다.
평소 관계가 좋지 않던 한살 터울의 동생이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휘두르는데 화가 치밀어 장롱속에 있던 38구경 권총으로 동생을 쏴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징역 10년.
워싱턴주립대학의 교수출장 강의를 듣는 등 모범수로 복역한 덕에 2년을 감형받아 7년7개월만인 지난달 21일 출소할때는 컴퓨터프로그래밍 학사학위를 따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강제추방돼 20년동안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고씨의 「꿈」을 일순 물거품이 되게 했다. 고국에 돌아와봐야 친인척이라고는 외삼촌(45)밖에 없었지만 새삶의 기대에 가슴이 부풀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련은 아직도 고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범죄를 저질러 형을 받았을지라도 다시 국내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는 속인주의에 따라 영문도 모른채 공항에서 살인혐의로 경찰에 연행된 것이다.
『정말 새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은 죄야 크지만 이제 다시 교도소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면 영원히 인간으로 재생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울먹이며 애원조로 변한 딱한 사연은 끝나가고 고씨는 6일 정식입건돼 죄의 대가를 충분히 받았다는 법원의 한가닥 선처를 기대하며 처벌을 기다리게 됐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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