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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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매스컴에 사용되는 말들은 그 개념이 분명해야 하고, 속어나 비어는 될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정보사땅사기사건이 연일 보도되면서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쓰이고 있어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돈세탁」이란 낱말이 그것인데, 사기범들이 한 은행에 예금한뒤 몇번씩 찾았다 되넣고, 또 다른 은행으로 옮기고 하는 과정을 뜻하는 것임을 한참만에야 알았다. 참묘한 조어로구나, 아니 참 기발하고 사특한 표현이로구나 싶었는데 종내는 이런 말을 통용하게 된 동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좀처럼 분노를 금할수 없었다.
온당하지 못하게 획득한 더러운 돈이 몇번 은행에 들락거리고 나면 깨끗해진다니….
사기꾼들이 그들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 이런 수법으로 법망이나 선량한 사람을 속이는 것을 「세탁」이라 하는 모양이나 이는 결코 세탁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니 더 더렵혀지고 더 사악해지는 것이 「돈세탁」이다.
이것은 결코 문학적 은유도 아니고, 더구나 깜찍한 표현도 아니다. 선량한 사람을 우롱하는 더러움을 감추려는 사특한 언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은어가 그대로 사용되는데도 문제가 있고, 그보다 더 섬뜩한 것은 그 말이 쓰이는 내면에 동의무의식이 잠재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어떤 수단으로 획득한 것이든 잘만 쓰이면 그 전의 잘못은 숨겨질수 있다는, 더 확대하면 동기나 수단이야 어찌됐든 목적만 달성되면 다 수긍할 수 있다는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섬뜩하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세탁된 돈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나돌아 다닌다는 사실을 은연중 동의하고 있음에서는 아닐까.
오늘날 우리사회는 불신의 만성질환을 앓고있는데 이병증은 급기야 부정이 드러나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매스컴에서만 다루지 않으면 적당히 얼버무려질 수 있는것으로 달성된 목적에 의해 수단이나 동기 모두 정당화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병발증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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