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의 'DJ 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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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경기지사(左)가 19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김 전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0일 동교동 사저로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지난해 12월 한나라당 소속으로 동교동을 찾아 미리 신년 인사를 했던 이후 5개월 만이다. 그러나 이번엔 범여권 주자로서 방문했다.

정치권에선 손 전 지사와 DJ 진영 간 연계설이 나돌고 있다. 경기도 시흥 출신인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후보에게 맞서려면 DJ의 도움을 받아 호남 민심을 얻는 게 절실하다는 지적이 있다. DJ로서도 범여권 지지도 1위인 손 전 지사와 우호 관계가 나쁘지 않을 것이다. 1시간 10분간 진행된 이날 만남은 손 전 지사 측이 방북 직후인 14일 "방북 성과를 전하고 싶다"고 요청해 이뤄졌다.

▶손 전 지사="(접견실로 들어서는 DJ에게)동해선.경의선 연결은 김 전 대통령의 업적입니다."

▶DJ="(흡족한 표정으로)북한이 손 지사에게 적극적인 자세인 것 같네요."

▶손 전 지사="지난해 제가 북한에서 벼농사 시범사업을 실시한 게 대통령님의 햇볕정책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올 3월 한나라당 탈당 이후 손 전 지사는 전국의 대학들을 돌며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임했다. 평양에선 DJ가 주장해 온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당시 방북에 앞서 손 전 지사 측은 DJ 측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게 자문을 구했다. 지난주엔 5.18을 맞아 광주에서 사흘이나 묵었다. 그래서 그가 DJ의 정치적 후계자가 되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손 전 지사 측 한 인사는 "최근 열린우리당 의원을 만났는데 'DJ 연계설이 사실이냐'부터 묻더라"고 했다. 손 전 지사 측에서 범여권의 관망파 의원들을 빨아들이는 지름길로 DJ의 후원을 손꼽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손 전 지사는 DJ를 만나는 형식을 놓고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21일 열린우리당 정대철 고문으로부터 고 정일형 박사 추도식에 참석해 달라고 제의받았다. 여기엔 DJ 내외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자리를 피했다. 손 전 지사 측은 "행사에서 DJ를 우연히 만나 사진 한 번 찍는 식은 곤란하다. 격식과 의미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했다.

한편 손 전 지사는 21일부터 5박6일간 방미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손 전 지사 측은 "미 행정부.정계의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을 최종 조율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맞지 않았다"고 했다.

◆ DJ '범여권 대통합' 주문=전날 독일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던 DJ는 "국민이 바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범여권 대통합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양당 구도를 만들어야 하며 이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해 왔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 박상천 대표의 '열린우리당 일부 인사 배제론'에 DJ가 우려를 표명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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