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비방 CD 내용 보니 일고의 가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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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를 얘기하는 동안 웃음을 머금었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현실 정치로 주제를 옮기자 얼굴이 굳어졌다. 특히 검증 문제를 꺼낼 땐 톤이 올라갔다. 네거티브를 당하는 건 오히려 자신이라는 입장이 완강했다.

박 전 대표는 “네거티브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상대를 흠집내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면 나에 대한 불법 CDㆍ유인물 같은 것을 의원회관에 뿌렸다는데 그런 게 네거티브”라고 했다.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 내 의원회관에는 박 전 대표를 비방하는 과거 기사 등을 담은 CD가 유포됐었다. 비방물을 직접 봤느냐는 질문에 “조금 봤다”고 답했다. 내용에 대해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잘랐다.

‘박 전 대표 관련 제보와 증언이 많다’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 주장에 대해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다 확인하자는 거 아니냐”고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갑자기 “내가 공당의 후보를 검증하는 일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겠느냐”고 기자에게 질문했다. ‘검증은 필요하다’고 답하자 “그렇게 대답하면 다른 진영(이 전 시장 쪽)에선 ‘네거티브한다’고 그런다”고 했다. ‘박 전 대표 쪽에서 네거티브를 하고 있다’는 이 전 시장 측 공격에 대한 역공이다. 박 전 대표는 “검증을 하자는데 네거티브라고 하는 것은 검증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똑같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이 세 번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후보의 정책ㆍ개인ㆍ이념 문제로 실패하면 큰일이니 그런 실수를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증 주체에 대해선 “나도 검증의 대상”이라며 “후보가 할 일은 아니고 당의 책임”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 전 시장의 ‘정책 검증 대상 1호’로 꼽히는 한반도 대운하 비판도 내놨다. “경부운하 얘기가 나온 지 시간이 상당히 흘러 전문가들의 토론이 있었다”며 “의견을 종합해 볼 때 경부운하는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고 환경파괴의 가능성도 높다”고 못박았다.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나라면 하지 않겠다”는 정도에 머물렀던 과거 비판에서 수위가 한결 올라갔다.

한나라당을 분당 위기로 몰았던 ‘경선 룰’ 분쟁의 책임이 이 전 시장 쪽에 있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정해진 원칙과 약속을 지키면 싸울 일이 없다”며 “(선거인단) 숫자를 20만으로 늘리는 것을 합의해줬는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또 여론조사(투표율)를 100%로 하자고 해 한참 소란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 불출마 결정은 국민들이 집권세력에 등을 돌린 결과로 해석했다. 박 전 대표는 “사실 두 분은 다른 당보다는 한나라당과 성향이 맞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그래서 같이 손잡고 선진국을 만드는 데 힘을 합했으면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두 분 다 사퇴하는 걸 보면서 국민들이 (옛)집권 여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봤다”며 “그쪽은 지지받는 후보가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구도”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빅2’와 교감설이 나오는 무소속 정몽준 의원과의 연대 가능성을 묻자 “정책과 생각이 같다면 어떤 분과도 같이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얘기가 진행된 것은 없다”면서도 “지금 현재로서는”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두 사람은 장충초등학교 동문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를 “비정상적인 것을 바로잡아서 국민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잘사는 선진 한국을 만들고 싶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국가지도자가 잘못해 까먹는 경제성장률이 2%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그는 “법을 안 지키고 공권력이 땅에 떨어져 매년 1%씩 (경제성장률이) 날아간다”며 “쓸데없는 규제와 외교역량 부족으로 달아나는 게 또 1%”라고 했다. 흐트러진 나라를 리더십으로 살려내면 잠재성장률 5%를 합쳐 7%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박 전 대표는 “강력한 리더십은 근육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돈을 많이 갖고 있어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며 “부정부패하지 않고 깨끗하고 원칙을 지켜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 그 리더십이 가장 강력하다”고 말했다.

대북 정책의 핵심으로는 투명성과 원칙을 꼽았다. 2002년 5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던 때를 떠올리며 “(김 위원장이) 화통한 성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당시 북한 방문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초청이 왔다고 통일부에 신고하고 김 위원장과 회담한 내용, 합의한 내용을 하나도 빠짐 없이 통일부 장관에게 얘기했다”고 공개했다. 박 전 대표는 “지금 북한이 핵개발을 하고 갈 데까지 가버렸다”며 “북한이 약속을 안 지켜도 우리는 무조건 감싸기만 해 결국 이렇게까지 왔다”고 비판했다. 남한이 원칙 없이 북한을 대하고 국제공조를 잘 못한 결과가 핵개발 상황으로 연결됐다는 인식이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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