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해야 말이 잘 나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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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7면

말하기를 직업으로 해왔고 대학에서 말하기를 가르치고 있는 나는 사실 말하기에 별 취미가 없던 아이였다. 말을 한창 배워가던 대여섯 살 무렵, 엄마가 마당에 빨래를 걷으러 나가시는 걸 보고 “엄마, 이왕이면 나간 김에 거기 있는 내 장난감 좀 가져다 줘”라고 말했다. 당시 알게 된 ‘이왕이면’을 넣어 말짓기를 시도한 것이다. 된통 혼났다. “아이가 쓸 말을 써야지 그 무슨 말버릇이냐”며.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아, 어른들은 자라나는 아이가 새로운 말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구나’였다.

사람은 누구나 말하기를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다. 유전자에 따라 유년의 기억과 집안 분위기, 학창시절과 사회에서의 경험에 따라 불안요소는 다양하다. 늘 조용한 집안 분위기에서 말이란 게 그저 야단거리만 됐던 기억을 갖고 있어서 말을 잘 못 하는 사람, 수업 시간에 발표 한 번 했다가 엉망이 되어 말하기에 자신을 잃은 사람, 자신은 완벽하길 바라는데 말하기 상황이 자신의 완벽추구를 해치기에 아예 말을 안 해버리는 사람. 어찌 보면 다 눈물겨운 일이다, 말하며 살아간다는 게.

말하기 불안의 증상도 가지가지다. 대화 중 다른 사람과 눈맞춤을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과 목소리가 떨리고 눈앞이 하얗게 백지가 되고 말을 더듬거나 아무런 기억이 안 나고….

말하기는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타인에게 나를 표현하고 자신이 면밀한 관찰의 대상이 되는데 그저 편안하기만 한 뻔뻔한 인간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은 잘만 다스리면 말을 더 잘 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아무런 긴장 없이 늘어져 있는 사람이 말을 잘할 수는 없다.

긴장을 다스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손이 떨리면 다른 한 손으로 떨리는 그 손을 잡아주면 된다. 얼굴의 홍조와 열기는 심하지만 않다면 오히려 발표자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기도 한다. 심장 박동은 발표 전의 심호흡으로 가다듬으면 된다. 큰 소리로 발성 연습할 곳이 있다면 한번 외치고 들어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말의 흐름을 따라가는 키워드를 적은 작은 메모를 손에 쥐고 발표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준비한 말을 그대로 외우거나 써온 것을 그대로 읽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않고, 잘 들리지도 않는다.

눈맞춤은 꼭 해줘야 한다. 따뜻한 눈빛으로. 청중을 왼쪽ㆍ가운데ㆍ오른쪽으로 대략 나눠 골고루 바라보아야 한다. 주목하지 않는 청중에게는 똑딱똑딱 2초 정도(눈길을 받기에 꽤 긴 시간이다) 쳐다봐 주면 갑자기 당황하며 주의를 집중한다.

증상 치유 이전에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먼저 누구나 말하기에 긴장과 불안을 느낀다는 점을 기억하자. 내가 못나 불안한 것이 아니다.

또 ‘내 말을 듣는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내가 그들과 함께 무엇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자.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펴기 위해 남 앞에 선다. 결국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과 자신의 뭔가를 나누려는 것이다. 청중은 걱정하는 만큼 가혹하지 않다. 실수하면 다음에 만회하면 된다.

직업을 통해서라도 내가 말문을 트지 않았더라면 홀로 해낼 수 있는 것보다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이 이 세상엔 더 많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 내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세상을 살았을지 모른다.

유정아씨는 현재 KBS 1FM ‘FM가정음악’을 진행하며, 서울대학교에서 말하기를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거쳐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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