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타고 뼈가 녹는 레드 와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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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9면

‘Domaine de la Romanee Conti’는 와인을 좀 마실 줄 안다는 이 모두가 동경하는 이름이다. ‘전설적인 포도원’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매우 뛰어난 와인이다. 18세기에 소유권 경쟁에서 승리한 콩티 왕자의 이름을 따서 이때부터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라는 명칭을 사용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와인 시음기-‘DRC 에세조 2002’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와인 애호가 한 분의 말을 인용한다면 “‘DRC’의 적포도주는 확실히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젊을 때는 풋풋하고 발랄한 처녀로 가슴을 설레게 하고, 나이 들어서는 농염한 섹시미로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그 여성스러움에 끌려 쉽게 다가갔다간 그 강골(强骨)에 살이 타고 뼈가 녹는다나!

콩티의 와인들은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액체의 흐름이 물길처럼 쏴아 느껴진다. 그 찢긴 틈으로 분출하듯 마약이 섞인 아로마를 분출하고 지나간다. 긴 여운 속에 혼미한 정신이 깰 무렵, 다시 그 향을 찾아 잔에 입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마셔본 이마다 감탄하는 ‘로마네 콩티’의 와인 중 오늘은 베스트 빈티지로 꼽히는 ‘2002 에세조(Echezeaux)’를 만나본다.

미디엄 루비 컬러가 꼭 풋풋한 소녀의 입술을 떠올리게 한다. 새디먼트는 거의 없는 걸로 보아서 보관이 매우 잘 돼 있다. 잔잔하게 플라워 캐릭터로 시작하여 매우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들이 피어 올라온다. 로즈 라스베리 스트로베리 바닐라 바이올렛 허브 미네랄 홍삼 얼시 리더 약간의 스파이시함이 다가온다. 부드럽고 하늘하늘한 느낌의 향기가 기분 좋다.

시간이 더해갈수록 향의 파워가 더해지며 더욱더 복합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입을 가득히 채워주는 타닌은 아니지만 적절한 힘이 오른다. 약간은 강하게 느껴지는 애시디티가 침을 절로 고이게 만들며 산뜻하게 마무리되는 피니시 또한 매우 기분 좋다. 뛰어난 밸런스를 가지고 있으며 보디감이 참 좋다. 프루티함과 주시함은 꼭 은은한 향수를 머금은 기분이다. 컴플렉시티와 파워가 다른 ‘로마네 콩티’에 비해 조금 떨어져 흠이지만 약간은 모자란 듯하면서 맛있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와인이 바로 ‘에세조’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추천 빈티지는 1978·85·90·91·96·99·2001·2002년 산. 출시 후 2년 이내에 테이스팅을 하거나 아니면 10년 정도 숙성기간을 가진 뒤 시음하는 것이 좋다. 디캔터에서 브리딩하기보다는 병에서 천천히 브리딩해 시음할 것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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