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 『바다 모음 시집』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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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힘과 좌절, 몰림과 쏠림, 삶과 죽음, 그 순정한 이율배반으로 시의 영원한 주제가 돼온 바다를 모은 시집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가 출간됐다. 시를 하도 사랑해 수백편 줄줄 외고 시를 위한 활동에 앞장서 우리나라 초유의 명예시인이 된 김수남씨(색동회 회장)가 엮어 깊은샘출판사에서 펴낸 이 시집에는 최남선 김소월 정지용에서 서정주 신경림 이성부를 거쳐 황지우 곽재구에이르기까지 근·현대시인 1백 3명의 바다를 주제로한 시 1백8편이 실렸다.
『처-ㄹ썩 처-ㄹ썩 척쏴-아/따린다 부슨다 문허버린다/태산같은 높은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요것이 무어야 요게무어야/나의 큰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시조·한시등 기존의 시와는 다른 우리의 근·현대시는 1908년 발표된 최남선의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왔다. 여기서 바다는 폐쇄된 토착문화를 부숴버리는 하나의 힘으로 나타난다.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눈 뜨라. 사랑하는 눈을 뜨라……청년아,/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방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아라스카로 가라!/아라비아로 가라!/아메리카로 가라!/아프리카로 가라!』(「바다중」)
나라를 잃은 청년 서정주에게 바다는 애비·에미·형제·친척을 잊어야만하는 뿌리뽑힌 고해일 뿐이다. 뿌리뽑힌 떠돌이로 세계로 내미는 매정함이다. 최남선에게 신생으로 비쳤던 바다가 서정주에게와서는 죽음으로 드러난다. 물론 이 두시인에게서의 바다는 우리의 역사적현실과 궤를 같이한다.
『돌아올 땐/주름이 잡힌다/아무도 몰라보는 고향/·뱃길에서 머리가 희여 돌아온다//바우 위에 새 앉듯이/고대로 늙은 안해곁에/나는 어릿 어릿 수거진 숫총각//아- 사탕이란/바다 멀리서 느끼는 것』
제주도로 이주하던 윤선도가 도중에 주저앉아 살다간 해남출신 이동왕의 「바다」전문이다. 바다안개에 가린 앞섬들, 배들이 내지르는 목쉰 무적으로 신화적분위기를 자아내는 해남앞바다 모습과 결코 한마디로 무어라쉽게 말해지지 않는 우리네 인생이 켭치고 있다. 바다앞에 서면 도대체 삶과 죽음등의 2분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바다를 주제로한 이 시집에선 바다가 그렇듯 혼융된 삼라만상이 시인의 직관에 의해 조각조각 우리삶의 본질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삶의 깊이와 넓이를 다시한번 가늠해보자 한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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