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 붕괴부른 행정부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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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다리 중간부분이 깜쪽같이 사라진 남해 창선대교의 모습을 TV나 신문을 통해 본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시냇물위에 걸린 다리도 아니고 섬과 섬을 연결하는 길이 4백50m,폭 8.5m나 되는 큰 다리가 한순간에 바다로 무너져 내려 통행하던 사람이 함께 떨어져 죽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해외토픽감에 충분한 나라망신살이 뻗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이 다리의 관리책임기관인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이 사고직전에 실시했다는 안전진단 결과다. 보도에 따르면 건설당시부터 교각붕괴 사고가 일어나는 등 부실공사로 말썽을 빚더니 완공뒤에도 다리가 한쪽으로 기울고 다리중간의 이음새 부분이 갈라지고 진동이 심해 주민들이 붕괴위험을 느껴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이후 현지 경찰과 행정기관의 여섯차례에 걸친 위험통보를 받은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은 지난 1일에 겨우 안전점검을 하긴 했으나 결론은 「당장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차가 다녀도 위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고의 원천적인 요인이야 물론 부실공사와 형식적인 준공검사에 있겠지만 한달뒤에 무너져 내릴 다리의 안전진단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의 책임 또한 그에 못지않다. 그런 엉터리 안전진단 결과는 기술수준이 모자라서인가,아니면 안전진단 자체가 형식적이고 무성의한 것이었기 때문인가.
어떻게 해서 다리가 무너져 내릴 정도의 부실공사가 이루어졌으며,그런 다리가 버젓이 준공검사를 받았는가도 철저히 조사해 업자나 당시의 행정책임자에 대해 문책을 해야할 것이다. 하나 엉터리 안전점검에 대해서도 그에 못지 않는 비중으로 그 속사정을 따지고 책임을 가려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이 안전점검후 한일이라곤 난간에 페인트를 칠하고 금간 다리바닥에 시멘트를 바른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꼭 겉발림 행정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아 개탄이 절로 나온다.
이번 사고는 우리나라 건설공사의 부실상과 감독행정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상징적인 사고다. 아직 이처럼 사고가 나진 않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리가 전국 곳곳에 적지 않을 것이다. 어디 다리 뿐이겠는가. 각종 대형 건설공사에는 으레 공사부실과 그것을 눈감아주고 개인 잇속을 챙기는 공무원의 부정이 바늘에 실가듯 붙어다니는게 우리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경종을 울려주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수사와 따끔한 문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당국은 비슷한 사고를 막기 위해 오래된 다리나 건축물에 대한 안전대책에 눈을 돌려야 한다. 앞으로 태풍이라도 닥치면 또 어떤 사고가 빚어질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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