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완화와 정부의 폭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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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정부·여당의 하는 일이 후안무치에 마이동풍격 저돌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때는 지나치게 여론에 민감해 결정직전의 중요정책까지 철회하거나 무효화시켜 중심없는 정부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래도 그때는 여론의 향방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된 정책이라면 고치는 겸허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아니다. 번연히 문제가 있는 것인줄 알면서도 고치거나 개선할 생각을 아예 포기한채 한술 더떠서 잘못된 쪽으로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주도 개발특별법에 따른 시행령,그리고 잇따른 그린벨트 완화 전국확대라는 일련의 정부·여당의 정책결정 과정이다. 제주도개발특별법 자체가 단기적으로는 관광수입을 늘리는 장점을 지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토와 자연의 훼손이라는 점에서 특히 제주도민의 상당수가 이를 반대해온 터였다.
그렇다면 정책방향은 반대의 여론을 수용해서 개발과 동시에 국토훼손을 최소화 시키는 쪽으로 바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반대주민을 무마하기 위해 그린벨트안의 건축을 허용하는 쪽으로 시행령을 만들었다. 또 이 시행령이 전국의 여타지방과는 불균형이라해서 전국적으로 그린벨트를 완화하는 쪽으로 여당이 「묘안」을 내놓고 있다. 한번 잘못들어선 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고치려는 생각은 않은채 잘못에 잘못을 거듭하면서 끝내 그린벨트 완화를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큰 잘못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린벨트의 원칙적 고수와 보전이 국가 백년대계의 근본정책이어야함을 되풀이해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원칙이 한 지역의 단기적 개발이익 때문에 흔들리고,끝내는 전국토의 황폐화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저돌적 정책추진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정부는 권정달씨의 산은이사장 발령을 내놓고 여론의 혹독한 지탄을 받았음에도 오불관언의 자세를 보였다. 소문과 의혹이 깊어지고 있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다음정권으로 넘겨야 한다는 야당 등의 주장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으며,민자당 단독국회를 비난하는 여론의 집중공세에도 불구하고 「의연한」자세를 고집하고 있다. 이제는 선거용 선심으로 전국토를 파헤칠 그린벨트 완화까지 감행할 태세다.
우리는 정부가 임기말의 누수현상으로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할까봐를 걱정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문제는 해야할 일은 덮어둔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위해 정부·여당이 저토록 폭주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개탄하는 것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선거선심으로 바꾸고,공익보다는 특정인이나 일부계층에 특혜를 줄 소지를 안고 있는 잘못된 정책의 추진은 지금 당장 철회하기를 엄중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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