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특급스타가 끼고 도는 깍두기 배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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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놀이를 할 때 보면 편을 가른다. 참가 인원이 홀수면 어쩔 수 없이 한 명이 남게 되는데 이를 일명 '깍두기'라 불렀다. 깍두기가 정해지는 기준은 간단하다. 놀이를 가장 못 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서로 안 데리고 가려 하니 마지막까지 남는 게 그들이다.
 
영화배우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딱 일치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이런 깍두기들이 존재한다. A급의 주연 배우가 영화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개런티 외에 자기 소속사 무명 신인배우를 조연 역에 넣어달라는 요구를 할 때가 있다.

이때 제작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캐스팅되는 그 아무개가 바로 깍두기가 된다. 큰 무리가 없다면 제작사에서도 A급 배우를 출연시키기 위해 이런 요구를 별 말 없이 수용하는 것이 이 쪽의 일반적인 룰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옵션으로 들어온 배우가 현장에 와서 대사를 하면서 국어책을 읽듯이 한다면 그 현장의 상황은 정말 안 보고도 비디오다. 감독은 연방 "NG"를 외쳐댈 것이고, 내 인생을 살면서 절대 겪고 싶지 않은 하루가 되는 날이다.
 
요즘은 매니지먼트사들이 시스템을 잘 갖춰 깍두기 배우도 기본적인 연기 수업을 받고 촬영장에 나온다. 그래서 감독이 배우 교체를 원하는 상황까지 가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그 깍두기의 카메라 뒤 행동이다. 정확히 두 가지다.

A급 주연배우의 빽(?)을 믿고 마치 자기가 그 주연 배우인 양 거드름 피우며 스타 대접 받기를 원하는 골칫덩어리 신인배우. 정말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연기는 연기대로, 촬영분이 없을 때는 마치 현장의 스태프인 양 일을 옆에서 거들며 같이 고생하는 신인배우.
 
어린 시절, 단골 깍두기를 맡던 아이가 게임에 참여하고자 할 때 난감했지만 비난하지 않았듯 깍두기 배우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단지 어떤 배우냐가 우리 현장 스태프에게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확언하건대 전자의 깍두기는 그에게 벼락같은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현장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깍두기는 최소한 작은 배역이라도 꾸준히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산업과 자본으로 치닫는 영화판이지만 아직도 이 바닥은 한 번 맺은 좋은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믿음으로 많은 섭외 결정을 내리는 '아름 아름의 관계'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 가르다 남는 한 명을 우리는 왜 '깍두기'라고 부르는 걸까?

파토스(원작자 요청에 따라 블로그 URL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블로그 플러스(blogplus.joins.com)에 올라온 블로그 글을 제작자 동의 하에 기사화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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