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하기 '극과 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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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일 초강국 미국을 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오일 달러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러시아는 거침없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마구 공격한다.

반면 실용주의에 기초한 미.중 관계는 유례없는 화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군사 분야 협력이 눈길을 끈다.

◆ 악화일로로 치닫는 미.러 관계=미국과 러시아는 최근 들어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상호 비방을 자제하기로 15일 합의했다. 14일부터 이틀간 러시아를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자극적인) 언사는 (미국과 러시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서로 성명의 발언 수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미국 측 견해를 푸틴 대통령이 지지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10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 연설에서 "과거 제3제국(나치 독일) 같은 강압정책이 오늘날 다시 나타나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며 미국을 나치에 비유하며 비난했다. 그런 푸틴 대통령이 말조심을 하자는 미국 측 제의를 수용함에 따라 그간 가열 양상을 보였던 양국의 비방전은 일단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장 양국 관계가 실질적으로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전의 씨앗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배치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믿지 않는다. 폴란드에 10기의 요격 미사일을 배치하고, 체코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려는 미국의 MD 계획은 결국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라이스 장관에게 이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은 기자들에게 "다른 나라가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거부하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MD 계획을 강행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는 MD 문제를 둘러싸고 앞으로도 계속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은 90년대 인종 대학살이 벌어졌던 코소보를 세르비아 영토에서 분리, 독립시키는 문제를 둘러싸고도 대립하고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와 관련, "해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유엔의 관리 아래 있는 코소보를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거쳐 독립시키려는 방침이나 세르비아와 그 동맹국인 러시아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항공모함 분야도 협력하는 미.중 관계=미국과 중국의 협력은 경제 분야를 넘어 민감한 군사 분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티머시 키팅 태평양사령관은 12일 베이징(北京)에서 우성리(吳勝利) 해군 사령관에게 "중국이 항공모함 개발에 관심을 두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이에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미군 고위 관계자가 중국의 항모 보유 의사에 대해 이처럼 긍정적인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다. 키팅은 미.중 군사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0일부터 닷새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14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키팅 사령관은 "중국이 (항모 보유를) 원한다면 이 문제로 양국이 불필요하게 갈등을 빚을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중국이 원하는 만큼 돕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키팅 사령관은 나아가 "한 척의 항모를 개발, 운용하는 데는 복잡성과 어려움이 따른다"며 여러 척의 항모를 보유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충고까지 했다.

키팅 사령관은 이와 함께 양국의 공동 군사훈련을 보다 낮은 부대 단위로까지 확대해 군사협력을 강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군도 군사협력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미.중 관계 진전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군사전문가인 린창성(林長盛)은 홍콩 문회보(文匯報)에 "89년 미국은 중국에 대해 항모를 포함한 각종 무기 금수조치를 취했고, 이 정책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에 키팅 사령관의 발언은 개인적 견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용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 미.중 협력이 전에 없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워싱턴.홍콩=이상일.최형규 특파원,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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