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략」이 필요한 때다/이각범(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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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재 우리사회를 포함하여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세기적 변화다. 주로 선진국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냉전이후의 신질서 모색이 그러하고,종래의 생산개념을 대체하는 정보·환경·문화 중심의 새로운 생산개념의 등장이 그러하며,나라 안팎의 다양한 조직형태의 변화 또는 그러하다.
○세기적 변화 능동 대처
세기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가 필수적이다. 변화는 보다 많은 우연성과 불가측성을 수반하기 때문에 종래의 단선적·인과귀결적 사고로는 이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
그 대신 체계적이면서도 복합적 사고가 변화의 수용에 보다 적합하게 된 것이다. 세계화의 추세에 맞추어 보다 개방적이어야 하고,변화의 빠른 속도에 맞추기 위하여보다 유연하여져야 하는 것이 신사고의 특징이다.
세계화의 추세는 한편으로 초국가적,또는 탈국가적 성격을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민족을 단위로한 전략을 보다 강화하고 있다. 냉전의 종식으로 인하여 동서 양진영의 장벽이 무너졌지만 구소련 지역과 동유럽 지역에 새로 등장하는 많은 민족국가들이 이러한 아이러니를 설명해 주고있다.
며칠전에 종료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보듯이,한 나라의 내정에 속하는 경제성장률의 조정과 추경 예산 배정을 다른나라에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구화된 경제사정이고,이러한 요구를 놓고 냉정하게 국가별 이해를 따지는 것이 민족국가의 행위다.
우리 민족이 변화하는 세계적 환경에 대처하면서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전략이 절실히 필요함은 이와 같이 세기적 변화에 대응하는 주체가 민족국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사회의 중심부문에 위치한 지도집단들의 신사고가 요구되고 있는 이유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통일 체계적 연구 필요
우리 민족이 국가를 중심적 행위주체로 놓고 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을 「한국전략」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한국전략은 우선 우리 스스로를 국제적 맥락에서 책임지는 주체로서 전제할 때에만 성립이 가능하다. 「우리의 민족국가 형성이 언제부터인가,또는 언제부터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국가를 매개로 하여 우리 스스로의 진운을 결정하고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에 매김할 수 없을 때에,우리의 민족국가 형성은 미완의 상태에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전략」은 또한 종합적이고 총체적이어야 한다. 국가전략의 형성에는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여러 사회부문에서 개발되는 전문적 지식의 축적과 이러한 개별 지식들을 체계화하는 작업이 동시에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의 북방정책의 추진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역사회로서 구소련 사회에 대한 전문적 지식의 축적이 미미하였음을 절감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북방정책이라는 문제를 우리의 전체 국가전략에서 얼마나 체계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추진하였던가에 대해서도 회의하게 된다.
현재대로라면,통일문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도 「한국전략」의 존재를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통일의 당위론에 의하여 통일에 대한 합리적 접근이 압도되지 않는가,통일에 소요되는 제 비용을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통일과 관련하여 나타날 수 있는 사회이동의 문제,기업활동의 적응문제,새로운 국제적 위상에 대한 문제 등에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많은 구체적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며,이를 국가전략의 개념에서 종합적으로 취합하여 선택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전략은 실패한 사회주의가 추구하였던 바와 같이 한 사회의 여러부문활동을 통일된 계획아래에서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현 단계의 국가전략은 한 단위민족국가가 변화하는 세계질서 아래에서 선택하는 전략의 적합성을 최고로 높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별 사회적 단위의 자율성과 시장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총체적 대책마련 시급
다만,여러 사회집단이 추구하는 목표가 상충하고 우리 사회의 장기적 발전목표 역시 상충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한국전략」은 냉철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올바른 선택을 추구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 예를 든다면 일본과의 관계에서 현안이 되고 있는 무역역조의 시정과 기술이전의 목표를 동시에,그리고 전면적으로 달성하려는 것은 감정적 차원에 속한다. 「한국전략」에 의하면 이러한 두가지 목표에는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하며,순차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우리가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수많은 목표들이 상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목표를 개별적 차원이 아닌 민족의 장기적 발전이라는 종합적이고도 총체적인 차원에서 선택하려는 것이 「한국전략」의 길이다.<서울대교수·사회학>
◇필자 약력 ▲44세 ▲서울대 사회학과졸 ▲독 빌레펠트대 사회학박사 ▲동국대교수 ▲서울대 사회과학대교수 ▲저서 『한국노사관계의 공정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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