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선 「제일」이 정대리에 속았다지만…/사라진 230억 의혹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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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입출금 이상” 눈치채고도 방치/검찰 “윤 상무 강박관념 탓” 설명/모종 밀약있거나 매입확신 가진듯/정보사땅 사건
정보사부지 매각 사기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은 국민은행 압구정서지점 정덕현대리(37)가 제일생명이 맡긴 예치금 2백30억원을 빼돌린 수법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이번 사건을 성무건설 정건중씨(52) 일당이 꾸민 단순사기로 잠정결론을 내렸으나 그같은 결론에 강한 반론이 제기돼 의혹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제일생명측은 예금거래 과정에서 정씨 일당·정덕현대리에 대해 수상한 행적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계기가 여러차례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전에 정씨 일당과 모종의 밀약을 맺고 있었거나 돈이 빠져나가도 문제의 정보사부지를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란 심증을 주기 때문이다.<관계기사 2,3,18,19면>
제일생명 윤성식상무(51)는 지난해 12월26일 자신의 명의로 개설한 예치금 2백70억원중 1백50억원은 수표로,나머지 1백20억원은 회사명의통장에 넣어주도록 요구했었다.
이때 이미 전액을 빼돌린 정 대리는 당황한 나머지 거래지점이 아닌 석관동지점에서 발행한 통장을 만들어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또 윤 상무는 올 2월1일 국민은행 서초동지점에서 세개의 통장을 조회한 결과 예금인출 등 「이상」이 있는 것을 발견,정 대리에게 항의했으나 정 대리는 『사무착오』라며 컴퓨터로 위조한 세개의 가짜통장으로 바꿔주며 윤 상무를 속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2백30억원의 거금을 예치시킨뒤 두번의 「수상한」 상황에 닥치고도 금융전문가인 윤 상무가 철저한 점검에 소홀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은행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커미션 30억원에 대한 욕심과 거래를 성사시켜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싸인 윤 상무의 판단력이 흐려져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조치를 취하지는 못했다 해도 수상한 기미를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이 분명한 윤 상무가 2월17일 정씨 일당에게 다시 4백30억원의 견질어음을 선뜻 끊어준 것은 설명이 안된다.
견질어음은 비록 시중에 유통시키지 않기로 사전에 약정돼 있기는 하나 통상어음과 똑같이 거래가 가능해 정씨 일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제일생명측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 상무는 정씨 일당의 요구대로 4백30억원의 어음을 5억∼10억짜리 소액어음으로 교환,이들의 어음유통을 방조해준 듯한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윤 상무가 지난 4월 정씨 일당과 정보사부지에 대한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며 『계약금·중도금 및 잔금은 매매계약때 지급한 2백30억원과 발행어음 4백30억원으로 대체한다』고 명시,6백60억원을 「예치」시킨 것이 아닌 「지급」한 것으로 표현한 것도 이미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낳는다.
결과적으로 윤 상무가 자신이 맡긴 돈에 「이상」을 느꼈음에도 이를 묵인했다면 거래를 보장할만한 든든한 배후세력이 존재한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윤 상무가 순진하게 정씨 일당에게 속아넘어갔다는 검찰의 「단순사기」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아 이들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명을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결과 이번 사건이 정씨 일당과 김영호씨 등의 공모에 의한 단순사기극으로 잠정결론을 내리고 앞으로 사기자금 행방추적을 통해 배후유무를 확인한뒤 이번주 중반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자금책인 성무건설사장 정영진씨(31)가 제일생명으로부터 빼돌린 4백73억원중 상당부분을 나머지 일당 정건중씨 등을 따돌린채 별도로 은닉시켰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이 부분도 자금추적을 통해 가려내기로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11일 성무건설 사무실과 집 등 관련자들의 연고지에 수사관을 보내 관련서류 일체를 확보하는 한편 수배중인 김인수(40)·곽수열(45)·박삼화(39)씨 등의 검거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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