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5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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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림=김태헌

쪼유가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 남매는 불빛들 속을 함께 걸었다.

"둥빈아 신기하지 않니? 얘네 엄마는 무슨 색인데 네 마리가 다 색깔이 다를까? 얘는 회색이고 네가 안은 것은 얼룩이고."

"아빠 고양이가 다 다른가?"

둥빈은 얼핏 웃었다. 나도 얼핏 웃었다. 우리 남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색깔이 같건 다르건 어린 고양이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둥빈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자 제제가 달려나왔다. 나만 두고 둘이서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고 떼를 쓰려던 폼이 역력했는데 제제 역시 고양이들을 보자 환성을 질렀다.

우리는 지난 여름 손님이 사가지고 온 커다란 과일 바구니에 내 헌 스커트를 펴고 거기에 고양이 두 마리를 넣었다. 데리고 오는 동안 회색 고양이는 내 팔뚝을 여러 번 더 할퀴어서 내 팔은 낙서장 같이 변해 있었다. 나는 우선 팔뚝에 소독약을 발랐다.

"누나 이 고양이들 이름이 뭐야?"

제제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몰라 아직 이름이 없어."

내가 대답하자 제제는 "누나 나비라고 짓자. 내가 책에서 봤는데 고양이 이름은 나비가 좋대" 하고 말했다.

"그건 쌀집 고양이 이름이야."

둥빈이 내 대신 대답했다.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고양이는 얼른 바구니 속에 들어가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회색 고양이는 바구니 속에 들어가지 않고 내 침대 밑으로 들어가버렸다.

제제가 다시 말했다.

"누나 이 얼룩 고양이는 꼭 커피 라떼 같은 색깔이야."

나는 두 고양이의 이름을 코코와 라떼라고 지었다. 회색 고양이는 우유를 많이 푼 코코아 같은 색깔이었고 얼룩 고양이는 제제의 말대로 커피 라떼와 같은 색깔이었던 것이다.

"코코야, 라떼야."

제제가 내가 지은 이름을 불렀다.

얼룩 고양이 라떼가 야옹, 하고 울었다. 그러자 신기하게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고양이들과 나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양이들은 서로를 부를 때 야옹, 하고 울지 않는다. 야옹이라는 소리는 오직 사람하고 소통하기 위해 내는 소리인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코코는 아직 겁에 질려 있지만 라떼는 적어도 우리를 인정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 아이들은 코코하고 라떼야, 나는 엄마고 너희들은 삼촌이야. 그러니까 내가 학교 가고 없을 때에도 이 고양이들한테 잘 해줘야 해. 너희들은 삼촌이니까 알았지?"

내가 말하자 두 동생들은 착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나가 엄마면, 우리 엄마는 뭐야?"

제제가 끼어들었다.

"엄마는 할머니지."

"엄마가 할머니라구?"

제제가 깔깔 거리며 웃었다. 엄마가 돌아오실 때까지 퇴근을 하지 못하고 계시던 막딸이 아줌마가 우리들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끼어들었다.

"나는?"

"아줌마는 아줌마지요."

내가 대답하자 아줌마는 물을 그릇에 담아 고양이 앞에 건네주면서 중얼거렸다.

"아줌마라서 정말 다행이네… 잘못하면 나이 오십에 할머니 될 뻔했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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