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현대 치유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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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재미 여류 설치미술가 김진수씨(41)가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지난5월19일부터 9월6일까지 열고있다. 한국작가가 이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는 것은 비디오예술가 백남준씨에 이은 두 번째. 미국의 권위 있는 미술관에서의 초대라는 점에서 우리 미술계의 관심도 크다. 최근 뉴욕미술계를 돌아 보고 온 박경미씨(국제화랑디렉터)가 이 초대전을 본 소감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은 지난 84년 미술관 입구의 그랜드 로비를 거대한 설치작품 발표를 위한 전시공간으로 개조하고 이른바「그랜드 로비 프로젝트」(Grand Lobby Project)라는 이름의 기획전을 열어 큰 호응을 받아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재미 여류 설치미술가 김진수씨가 세계적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이 기획전의 초대작가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됐다.
이 기획전을 통해 지금까지 조셉 코수드·제니 홀처·토니 크랙·리온 갈럽·다니엘 뷰런 등 세계적 작가들의 대형 설치작업이 개인전 형식으로 발표됐으며 김씨는 여기에 30번째로 초대된 것이다.
『침묵 속의 변화(Tacit Tr-ansit)』라는 타이틀을 갖고 발표된 김씨의 이번 설치작업은 한마디로 현대 산업사회속에서 버려진 일상의 오브제에 한시적인 인간의 삶을 투영시키고 그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부활을 꿈꾸는「의식의 새장」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격자무늬로 엮인 굵은 철사와 가는 구리선을 수없이 감아 만든 높고 커다란 기하학적 구조물(새장)들 속에는 일상 속에서 폐기된 가구·유리조각 등 다양한 오브제들이 들어있고 이 구조물들은 관람객이 그 사이를 오가며 자유로이 감상하고 사색할 수 있도록 배치돼 있다.
전시장내의 침침한 조명은 구조물들의 어둡고 쓸쓸한 세기말적 분위기를 더욱 강조해주고 있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본질적 삶조차 산업사회의 일회적 순환구조 속에 함몰돼 가는 허무로부터의 탈피의지가 작가의 독특한 조형행위를 통해 나지막하면서도 강한 목소리로 표출되고있다.
그는 오브제에 석고붕대를 감거나 대담하게 반창고 등을 붙임으로써 현대인의 병리적 삶에 대한 치유의 의지를 상징화시키며 관객의 공감을 얻는데 성공했다. 대담함과 신선함이 충만한 김씨의 이번 설치작업들은 한국 출신 작가가 다시 한번 뉴욕 화단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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