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안보 협력회의/탈 냉전후 새 역할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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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끝없는 유혈 분쟁 보고만 있을순 없다”/나토·서구동맹 지원… 역외파병 길 열어
9일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이틀간의 일정으로 개막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은 동서냉전이 끝나고 동구와 소련이 해체된 시점에서 유럽질서에 상응하는 CSCE의 위상재정립 모색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지난 75년 미소를 비롯한 동서유럽의 35개국 정상이 헬싱키에 모여 범유럽안보협력체로 발족시킨 CSCE는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동서진영이 한자리에 모여 평화와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회의의 성격을 지녀왔었다.
그러나 지난 90년 11월 파리에서 열린 CSCE의 제2회 정상회담에서의 공식선언대로 냉전이 끝나 CSCE는 역할과 위상의 재정립을 요구받고 있다.
2차대전후 40여년간 분쟁다운 분쟁이 없던 유럽 각지에서는 지금 피비린내 나는 유혈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1년여만에 1만2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채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는 유고사태,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몰도바·그루지야 등 구소련내 각 공화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민족분쟁은 탈냉전이후 유럽의 분쟁을 대변하고 있다.
첫날 회의에서는 당연히 유고사태가 전체회의 분위기를 지배했다. 유고사태의 조속한 종식과 제2의 유고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럽내 분쟁예방과 종식이 앞으로 CSCE의 중심역할이 되어야 한다는데 모두들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구체적인 방법.
CSCE는 군사기구가 아니므로 평화를 강요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 문제를 풀기위해 지난 4월부터 3개월동안 각국의 CSCE 전문가들은 헬싱키에 모여 머리를 짜내왔다. 그 결과 10일 회담폐막과 함께 발표될 공동성명에는 CSCE를 유엔헌장 제52조에 의거한 지역안보기구로 변화시키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CSCE는 유럽내 군사기구인 나토나 서유럽동맹(WEU)을 평화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나토와 WEU는 CSCE의 요청에 따라 평화유지와 재건,인도적 구호활동을 위해 역외로 병력을 파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바 있다.
그러나 CSCE와 나토·WEU의 상호관계가 여전히 불명확한 상태여서 이 점이 회원국간의 불화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은 나토와 CSCE간의 유기적 관계를 고집하고 있는 반면 프랑스 등은 CSCE의 평화유지활동은 개별회원국과의 관계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CSCE의 결정에 따라 유고에 평화유지군이 파견될 경우 나토의 깃발을 달고 갈수 있다는게 미국의 주장이라면 참가여부는 나토가 아닌 각국이 결정할 문제로 나토깃발을 달아서는 안된다는게 프랑스의 주장이다. 이 점은 나토의 역할변화,유럽의 독자방위구상과 복잡하게 얽혀 쉽게 결말이 나기 어려울 전망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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