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화시책,일관성과 신축성(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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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9일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번에도 안정화시책을 일관성있게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업계에서는 경기의 불황느낌이 더욱 심화되고 산업경쟁력이 개선되는 증좌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은 터에 정부가 너무 고십스레 총수요관리정책에 집착하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부가 「불황」에서 빚어지고 있는 기업의 매출부진과 도산을 구조조정의 차원으로 해석하고,재정과 금융긴축을 바탕으로 안정기조를 다져가겠다고 거듭 약속하는 것을 일단 지켜 보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뼈대가 없고 자주 흔들려 기업이 적응하기 어렵다고 비판해왔는데 막상 정부가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것을 다시 몰아세우면 올바른 정책을 기대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의 각 경제부처는 선거를 앞둔 갖가지 공약과 선심사업을 벌이려는 여야당으로부터 적지않이 시달림을 받고 있다. 경제관료들이 다짐하는 안정화 시책이 자칫 표를 겨냥하는 정치논리에 밀려 경기부양책으로 급전환한다든가 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일관된 정책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일부 정치인들로부터 효율성이 전혀 배제된 예산사업을 추진하도록 압력을 받고 한계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요청이 밀리고 있는 약체정부를 여론이 단단히 감시하고,또 방패막이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정부의 경제운용계획이 바른 현실 진단위에 세워져야 한다. 경제의 흐름이 총수요관리에서 나타날 구조개선과 동떨어진 이상현상을 보이면 신축성있는 방향전환이 필요하며 정부가 예측하고 있는 물가·국제수지·성장률 등 거시지표의 동향이 낙관적인 추세에서 빗나갈 때도 이에 대한 탄력적인 대응에 주저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선거가 끝날 때까지 시행될 경제운용계획은 안정기조를 흐트릴지도 모르는 몇가지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 과연 돈이 적정선 이내에서만 풀려 나가겠느냐,또 내년 예산편성은 긴축범위에서 억제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에 빚어진 정보사 땅사건이 금융·증권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더욱 확대될 경우 기업의 경제활동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대형 금융사건 이후 자금시장이 경색되고 금리가 올라가 투자에 차질을 빚었던 과거의 경험으로 볼때 공정하고도 정당한 기업의 자금전략에 무리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의 치밀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경제운용계획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통화측면을 무시한 정책자금 지원이다. 중소기업 지원에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없으나 진성어음 할인을 무제한 확대하는 등의 무원칙한 정책은 결국 선거용 정책으로 물가안정의지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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