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돈에 메달리지 말자/이석구 동경특파원(특파원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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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종군위안부(정신대)에 관한 일본정부의 조사결과가 지난 6일 공식발표됐다. 내용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같았다. 대부분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 각 부처가 갖고 있던 것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일본정부가 관계자의 증언청취 등 적극적으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일본정부가 계속 조사하겠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태도로 미뤄 볼때 잘해야 기금을 만들어 종군위안부 출신자들의 생활비를 보태주는 정도에서 과거를 청산하려 할 것이다.
○진실규명에 초점을
이같은 상황에서 종군위안부문제의 핵심인 배상과 진상규명이라는 두가지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현명한지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종전처럼 배상과 진상규명을 모두 요구하는 방법이다. 일본이 들어만 준다면 가장 좋은 대책이다. 그러나 일본은 막무가내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률적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배상문제는 과감히 포기하고 역사적 진실규명이란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방법이 남는다. 이 방법은 일본에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부도덕함을 밝혀내 역사앞에 고개들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여전히 정신적 부담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제 배상이라는 돈 몇푼쯤은 안받아도 될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았는가.
사실 그동안 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가 우리일인데도 진상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이를 규명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올들어 이 문제가 크게 부각되어 신고센터를 만드는 등 부산을 떨었다.
○피해자배상 우리가
일본은 자료도 충분히 있고 당시 관여했던 사람이 무수히 생존해 있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젊은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종군위안부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 이를 규명하려 노력하는 한편 일본에 대해서도 이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배상문제는 우리가 무조건 주장할 수만 없는 법률적 측면이 있다. 순수하게 법적인 측면만 따져 본다면 정부와 정부간 배상,일본정부와 피해당사자간 배상,한국정부와 피해자간 배상문제 등 세가지로 나뉜다.
우리 정부 관계자나 일본내에서 종군위안부를 위해 도와주고 있는 학자들도 정부간 배상문제는 엄밀하게 법률적 측면에서 보자면 한일기본조약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견해를 대체로 갖고 있다. 불행하게도 조약은 두나라 정부가 유효하게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정권의 역사적 과오다.
그렇지만 일본정부와 피해자간 배상문제는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있다. 최근 유엔과 국제법학자들이 주장도 인륜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인배상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나 개인배상의 경우 일본에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승산이 높다고 볼 수 없다. 일본의 야당이나 재야법조인들은 개인배상을 지지하지만 일반적인 분위기는 국가간 협정으로 배사문제는 결말이 났다는 쪽이다.
그럴 경우 남는 방안은 우리정부가 피해자에게 배상해 주는 것이다. 정부는 과거 청구권으로 받은 자금을 경제개발에 쏟아붓다가 뒤늦게 징용자중 사망자에 한해 1인당 30만원씩 배상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생존자에게는 아무런 배상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 그 돈은 경제개발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따라 쓰여졌고 그 결과 우리의 경제수준이 지금과 같이 되는데 일조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정부는 생존 종군위안부 등에 대해 그동안의 무관심을 사죄하고 배상도 정부차원에서 할 때가 됐다. 정부에 그만한 힘도 생기고 경제적 여력도 있다. 사회 복지차원에서 불행한 생활을 하는 그들을 우리 스스로 돕고 나서야 한다.
○민족자긍심 지켜야
일본은 이미 끝난 정신대문제를 다시 들고나와 돈을 요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구차하고 치사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이들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규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가 『너희들 주장대로 한일기본조약으로 보상문제는 끝났다. 그러나 한일기본조약 어디에도 진상규명마저 포기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추궁하면 일본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입장에 설 수 있다. 몇푼의 돈이 더 중요한가,아니면 민족적 자긍심이 더 중요한가를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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