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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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기/내 골방구석에 누워서도/나는/천리밖 내 고향에 내리는/빗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고향의 낡은 집/녹슨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와/그 비에 쓸려 가는 것들의/아우성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비바람에 속살이 뜯겨 웅웅대는 붉은 산의 비명과/묵묵히 그 산을 지키던 묵은 나무들/그들이 넘어지는 소리를 들을수 있어요….』
김혜숙시인의 시 「장마」의 한구절이다. 요즘은 강줄기마다 거대한 댐이 들어서고 조그만 하천에도 제방을 쌓았지만,그래도 장마가 들었다하면 둑이 터지고 다리가 끊겨 우리의 삶의 터전들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어 놓기 일쑤다. 하물며 댐도 없었고 제방도 어설펐던 옛날의 장마는 그 피해가 엄청났다. 그래서 장마는 우리들에게 황토물과 그 물줄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가재도구며,가축이며,아름드리 나무들의 몸부림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아우성을 시인은 「고향 소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장마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3일 서울을 비롯한 중부일원에 10∼30㎜ 안팎의 비가 내렸다.
그런데 예년 같으면 제주도부터 시작해 서서히 북상하던 장마전선이 올해는 이상하게도 극심한 가뭄에 허덕이는 영·호남지방을 외면하고 서울·중부지방부터 먼저 비를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기상청의 설명은 제주도 남쪽해상에 머무르고 있는 주장마전선이 북상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중국 내륙지방에서 발생한 저기압의 영향으로 중부지방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상이변에 따른 기현상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아닌게 아니라 연초 미 국립기상청은 3∼5년주기로 나타나는 「엘니뇨현상」으로 올해 적도부근의 태평양 수온이 2.2도 가량 올라가 수개월내 지구 곳곳에서 엄청난 기상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고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수온이 상승하고 있는 범위가 지구의 4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어 그 피해는 과거 어느 해보다 클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그뿐 아니라 남미 열대림과 함께 시베리아 한대림의 남벌,필리핀의 화산재,걸프전때 불태운 유전의 연기는 기상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켜 올해의 기상이변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가 오다 말다하는 마른장마라고 해서 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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