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할 때 뇌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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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27면

어렸을 때, 어머니께선 유독 나의 거짓말을 잘 알아맞히셨다. 아무리 교묘하게 얘기를 짜맞추어도 귀신같이 잡아내셨다. 무슨 특별한 재주라도 있으셨던 걸까? 전 세계 63개국 2520명을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0%가 신체 부위 중 눈을 보고 거짓말을 알아맞힌다고 답했다. 이 결과는 누구나 거짓말이라고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행동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거짓말을 하면 상대방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을뿐더러 왠지 부자연스럽고, 초조해하며, 손을 제자리에 가만두지 못한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입으로는 거짓을 말할지언정 진실은 결국 손끝으로 스며나와 수다를 떨게 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할 때와 진실을 말할 때 우리 뇌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렌젤벤 박사는 자기공명영상기기를 이용해 거짓말을 하는 동안의 뇌의 변화를 관찰해보았다. 그 결과 거짓말을 할 때는 우리 몸이 각성상태에 놓일 때 반응하는 부위인 두정엽(정수리 부위)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무엇인가가 두렵거나 불안해서 긴장한 상태일 때 우리 몸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경계근무’를 선다. 이 때문에 거짓말을 할 때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손은 촉촉하게 땀에 젖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을 한다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뇌의 반응은 아니다. 거짓말을 하면 긴장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수적인 결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 거짓말 그 자체와 연관되는 부위는 어디일까.

거짓말과 관련 있는 뇌의 부위.

“김 대리, 보고서 준비 다 되었나?” 갑작스러운 과장님의 말씀에 잠시 주춤하다가 “예”하고 얼버무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할 때는 ‘전두 대상피질’이라는 뇌의 부위가 작용한다. 이 부위는 두 가지 안을 놓고 하나를 택하려고 고민할 때 반응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즉,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거짓말은 아주 짧은 순간, 진실과 거짓이라는 두 가지 대안을 놓고 갈등을 겪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종류의 거짓말도 있다. “이번 달에 카드비가 많이 나왔네.” 가계부를 쓰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지난번 동창회에서 녀석들의 성화에 나도 모르게 밥값을 계산하고 말았던 것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니 아쉬운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기에, “응. 아버님 모시고 외식했어”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 상황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그렇기에 사전에 가장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생각해두었을 것이고, 의심받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아버님께 전화를 드리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거짓말을 할 때는 오른쪽 뇌의 앞부분이 두드러지게 반응한다. 과거의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것과 관계 있는 부위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개구리ㆍ자벌레 등은 보호색을 이용해 천적(天敵)을 감쪽같이 속인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진화한 동물일수록 더 많은 속임수를 쓴다고 한다. 뇌가 진화한 고등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신피질(新皮質)’이라는 부위가 클수록 거짓말을 더 잘한다는 것이다. 이는 집단적인 사회생활과도 연관된다. 거짓말은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접근의 행동이다. 거짓말을 하려면 일단 족집게 도사처럼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아야 하고, 전투기 조종사처럼 앞뒤 문맥에 맞게 전략적으로 계획을 짜야 하며, 바둑을 두듯이 가능한 수를 미리 읽어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살기 싫다고? 해결책은 간단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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