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 뜨면 뭐든 할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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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영국인 마일즈 힐턴 바버(57.사진)씨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8년 전부터 장애가 없는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모험을 계속하고 있다.

1999년 섭씨 49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240km를 걷거나 뛰는 '사하라 마라톤'을 완주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 히말라야를 5300m까지 등반했다. 시각장애인으로는 최초로 썰매를 끌고 남극대륙 400km를 횡단했으며, 11일 동안 중국을 횡단하는 울트라마라톤에도 참가했다. 이 마라톤은 몽골고원 내부의 고비사막, 3700m나 되는 티베트 산악지대, 만리장성을 지나야 하는 매우 힘든 대회다.

2002년에는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 흑해에서 12번이나 수중 탐험을 했다. 2003년엔 초경량 비행기로 영국 해협을 건넌 최초의 시각장애인으로 이름을 남기는가 하면 비행기 조종석이 열린 상태로 6000m 상공까지 올라가 이 부문의 영국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때는 기온이 영하 55도까지 떨어져 비행장비에 서리가 가득 덮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모험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06년 호주 에어쇼에 구조용 수상비행기의 부조종사로 참가했고, 올 3~4월에는 초경량 비행기를 조종(부조종사 동반)해서 영국 런던에서 호주 시드니까지 2만2000km를 비행했다. 비행을 마치고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눈이 불편한 상태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모험을 하는 동기가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바버가 초경량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다.

"시각 장애인도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신체적 시각장애와 정신적 시각장애가 있는데 마음의 눈을 뜨면 시각장애인도 새로운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전 질환으로 20세 초반부터 시력이 약해지기 시작한 그는 30세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20여 년 동안 보통 시각장애인과 비슷한 삶을 살던 그에게 인생관을 바꾼 전기를 마련해 준 사람은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그의 형(58)이었다.

8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고 있던 그의 형은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남아공에서 호주까지 요트를 타고 항해하는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고 결국 성공했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 속에 시각장애는 도전이라는 생각이 싹텄다. 그는 "성공할 가능성만 있다면 성공 여부는 상황(시각장애)과 상관없이 마음에 달려 있다"며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력이 있을 때보다 시력을 잃고 나서 훨씬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7일 스탠더드차터드가 후원하고 주한 영국상공회의소(BCCK)가 주최한 오찬 행사에서 '많은 것을 얻으려면 꿈을 크게 가져라'란 제목의 강연을 한 뒤 8일 영국으로 돌아갔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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