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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기술 유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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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2조원이 넘는 피해가 있을지도 모를 자사의 자동차 기술 유출 사건을 접한 현대.기아차 그룹 관계자들은 11일 침울했다. 전.현직 직원이 다수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

검찰과 국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협력업체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퇴직당한 직원은 올 초 현직 후배의 안내를 받아 공장 내부로 들어가 생산라인 정보를 얻었다. "다 빼 가, 다 팔아먹으시오"라며 핵심 기술 자료를 넘겨준 현직 직원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회사 경영진 또한 기술 유출과 보안에 무감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중순 검찰이 수사를 본격화하고 나서야 기술이 새 나간 걸 알고 사내 컴퓨터의 문서 보안을 강화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셈이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술 유출도 증가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기업의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은 2003년 6건, 2004년 26건, 2005년 29건, 지난해 31건 등으로 해마다 늘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총 95조9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국정원의 분석이다. 특히 중소기업청이 2005년 기술 유출이나 지식재산권 침해를 당한 33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 업체에 당한 기업이 21개사에 이를 정도다. 중국의 한국 기술 빼 가기가 점차 지능화하고 첨단화하고 있다.

자동차만 보더라도 중국은 2004년 말 GM대우 마티즈의 짝퉁 차 'QQ'를 시작으로 기아차 쏘렌토 등 한국 차종을 모방한 차를 내놓고 있다. GM대우 관계자는 "기술이 유출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증이 없어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은 기술력에서 일본에 밀리고 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에 끼인 '샌드위치'에 비유되고 있다. 업계는 이번 현대.기아차의 기술 유출로 2010년 3년 정도로 예상됐던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1년6개월 차이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의 첨단 기술이 이런 식으로 슬슬 유출된다면 중국이 기술력에서 한국을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다.

기아차는 지금이라도 왜 현직 직원들이 그런 일에 가담하게 됐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기술 인력에 대한 대우가 부족했다면 현실화해야 할 것이고, 기술 보안에 문제가 있었다면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물론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기술력까지 중국에 따라잡히면 한국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문병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