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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14. 박정희 전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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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부터 골프를 배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티샷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중앙포토]

나를 태운 검정 지프가 도착한 곳은 서울 장충동 국회의장 공관이었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국회의장 공관에서 살았다. 내가 골프를 가르칠 사람은 박 의장이었다. '골프병' 한장상이 국가 최고 실권자의 골프 교습을 맡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국회의장 공관은 장충체육관 건너편에서 남산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있었다. 처음 가본 국회의장 공관에는 골프 연습시설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선 골프연습장을 짓기로 했다. 종로 5가에서 목재를 사다가 연습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텐트를 치니 작지만 아주 훌륭한 실내 연습장이 꾸며졌다.

내가 박 의장의 골프 교습 담당하게 된 것은 김종오 육군참모총장의 추천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지시가 내게 떨어졌다. 그때 박 의장이 골프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박종규 경호실장을 포함해 극소수였다.

신문에서만 보았던 박 의장은 얼굴이 약간 까맣고 키가 작았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는 근엄함이 담겨 있었다. '보통사람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박 의장은 그야말로 골프 초보였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국가 최고지도자가 된 뒤 주위에서 "외교를 위해서는 골프를 배우셔야 합니다"고 건의하자 골프를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립 쥐는 방법부터 가르쳤다. 박 의장은 내게 "얼마나 배우면 필드에 나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3개월 정도 연습하시면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박 의장은 운동 감각이 뛰어났다. 세 번째 레슨을 받고 웬만큼 공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진도가 빨랐다. 그런데 박 의장과 세 번째 만난 날 어디로부터 연락이 왔다. 레슨이 거의 끝나가는데 비서가 와서는 "외교사절을 만나러 가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내가 육군 이등병인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나를 "한 코치"라고 불렀던 박 의장은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한 뒤 어디론가 급히 떠났다. 그날 이후 나의 장충동 골프 교습은 끝났다. 무슨 까닭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나는 1963년 10월에 치를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느라 박 의장이 골프를 더 이상 배울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할 뿐이다.

박 의장은 63년 2월 26일 민주공화당을 창당했고, 그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나는 64년에 제대했다. 그리고 현역 때와 다름없이 서울컨트리클럽에서 훈련하고 있었다. 65년 어느 날 박 대통령이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라운드를 했는데 100타 정도 칠 정도로 실력이 늘어있었다. 그때 직접 만나 인사할 기회는 없었지만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계속 골프를 배웠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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