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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콘텐트를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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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계 미디어 시장 판도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156년간 세계 통신뉴스 시장을 지배해온 영국의 로이터, 월스트리트 저널을 거느린 다우존스, 미국 중부지방 최대 미디어 그룹인 트리뷴 컴퍼니, 알아주는 인터넷 강자인 야후…. 최근 흡수합병 도마에 오른 대어들이다. 이들에게 손을 뻗치는 쪽도 미디어업계 황제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 회장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 등 세계적 간판 기업가들이다. 매입을 위한 판돈만 줄잡아 조(兆) 단위를 웃돈다. 최근 1주일간 한꺼번에 굵직굵직한 흡수합병 제안들이 쏟아진 것도 이례적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에 대해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달, 고급 콘텐트에 대한 수요 증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FT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뉴스 소비 시장을 따라잡기 위해 신.구 미디어 간에 본격적인 짝짓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오랫동안 오프라인에서 축적해 온 양질의 콘텐트가 첨단 인터넷.통신기술과 결합하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 공격과 방어=뉴스코포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회장은 지난주 다우존스를 50억 달러에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다. 8일에는 캐나다의 금융정보 제공업체 톰슨이 "로이터를 인수하기 위한 예비 접촉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톰슨의 로이터 인수 금액은 175억 달러 수준이다. 이에 앞서 미 시카고의 부동산 재벌 샘 젤은 이미 82억 달러에 시카고 트리뷴을 집어삼켰다. 여기에다 주요 외신들이 5일부터 빌 게이츠 회장이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강자인 야후와 손잡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방어하는 쪽도 만만찮다. 로이터는 '황금주'(흡수합병을 막기 위해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 1주에 과반수의 의결권을 몰아줌)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다우존스도 '특별주식'(대주주인 밴크로프트 가문의 보유 지분은 24%이지만 의결권은 64%로 허용) 제도로 방어막을 쳐놓았다.

◆ 왜 욕심을 내나=톰슨이 로이터에 욕심을 내는 것은 강력한 경쟁 상대인 블룸버그에 맞서기 위한 전략이다. 블룸버그는 현재 세계 경제뉴스 시장의 33%, 로이터는 23%, 톰슨은 11%를 차지하고 있다. 런던과 유럽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가진 로이터와 북아메리카 금융뉴스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톰슨이 손을 잡으면 블룸버그에 필적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판단이다.

AP통신은 7일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이 호주 미디어기업 페어팩스 지분 7.5%를 3억1200만 달러에 팔았다고 전했다. 페어팩스 지분 매각은 머독이 다우존스 인수 희망을 밝힌 지 채 1주일이 안 돼 나온 것이다. 당장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지분 매각이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다우존스의 대주주인 밴크로프트 가문이 거듭 매각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머독 회장이 인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야후 인수를 시도하는 것은 혜성처럼 등장한 구글에 대항하기 위한 포석이다. 야후는 인수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뉴욕 증권시장은 구글에 대응하려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 연합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검색시장의 강자인 구글은 이를 바탕으로 온라인 광고 시장도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구글은 미국 온라인 광고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엔 광고업체 더블클릭을 31억 달러에 인수해 시장 점유율을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뉴욕 증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야후를 완전히 인수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인터넷 광고 분야에서 양사 간의 제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 경제뉴스 미디어가 표적=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기술 혁신이 미디어 시장을 바꾸고 있다"며 "그 중심에 구글이 있다"고 보도했다. 구글의 성공신화에서 보듯 앞으로는 각종 정보를 한곳에 모아놓는 것이 손님을 끌어 모으는 관건이다. FT는 "최근 뉴스 소비자들이 한곳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경향을 보인다"며 "이에 맞춰 미디어.인터넷 업체들도 생존 차원에서 흡수합병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급 정보다. 인터넷에 무료 정보가 넘쳐나지만 돈이 되는 고급 정보라면 기꺼이 돈을 내고 보겠다는 수요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뉴스와 각종 경제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공급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여기에다 인터넷.휴대전화 등 다양한 채널로 각종 정보를 빠르게 전해주기 위해서는 기업 덩치를 더 키울 필요가 있다. 최근 세계 미디어 시장의 태풍이 경제분야의 콘텐트에 강한 로이터.다우존스 등에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로이터 인수를 노리는 톰슨의 샤론 로런즈 최고 경영자(CEO)는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개별 뉴스든 패키지든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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