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파벌경쟁 지역감정의 주범|문용직씨 「한국의 정당과 지역주의」논문 통해 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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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 나라의 지역감정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연원을 가지고 있다.
또한 60년대 박정희 정권이후 시행된 사회·경제적 정책이 지역간 차별을 가져왔고 그 결과 지역갈등이 유발됐다는 사회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그러면 현재 우리 나라 현실정치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역주의는 문화적·구조적으로 이미 생성된 지역감정의 결과일 뿐이라고 볼 수 있는가.
반년간 『한국과 국제정치』이번 호에서 문용직씨(서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수료)는 「한국의 정당과 지역주의」라는 논문을 통해 정당을 둘러싼 정치과정이 지역감정을 반영하는 정도를 넘어 지속적이고 능동적으로 지역주의를 규정해 나갔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들이 지역간 대립을 표출하기 이전에 이미 야당은 영·호남간의 지역주의적 대립을 첨예화했으며 그 대립의 주된 원인은 파벌경쟁이라는 점이다.
둘째, 야당내의 첨예한 대립이 점진적이 아니라 급진적 변화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야당내의 지역주의적 대립이 국민들 사이에 이미 존재해 있었던 지역감정의 반영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급진적으로 나타나게 된 시기는 87년 대통령선거와 88년13대 국회의원선거부터다.
그에 앞선 81년과 85년의 11,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역주의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70년대엔 야당 내에 지방색을 띤 파벌이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평균 8개나 되는 파벌이 있었고, 그 지역감정은 매우 온건했다.
지역감정이 분명해진 것은 김영삼씨와 김대중씨가 야당의 핵심지도자로 떠올라 파벌경쟁을 벌인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85년 12대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부상한 후 민한당까지 흡수한 신민당에서 강력하게 떠오른 양 김씨는 87년 분당을 통해 통일민주당을 창당함으로써 다른 파벌은 모두 몰락시키고 자신들의 파벌만 남은 정당을 갖게된다. 영남과 호남이 첨예하게 나누어진 지역주의적 대립에 기반한 김영삼과 김대중씨의 양대 파벌만이 남게 된 것.
이 두 파벌은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것이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벙법이었으므로 이를 실천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양 김씨 간의 대통령 후보경쟁이 치열했던 87년10월에 실시 된 한 여론조사에서 지역감정의 해소문제는 해결이 긴급한 사회문제의 순위에서 8번째로 꼽히고 있다. 이것은 정당내의 지역주의가 유권자들의 지역주의에 시기적으로 앞서고 있었다는 근거가 된다.
그러다가 87년 대통령선거와88년 13대 총선에서 갑작스럽고 강력한 지역감정이 투표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은 야당이 분당해 김대중·김영삼씨가 개별 출마한 사건이다.
85년 12대 총선에서 민정·신민·민한·국민당이 있을 때의 정당별 득표 율에서는 지역
감정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88년 13대 총선을 보면 민주당의 호남지역 득표율과 평민당의 영남지역 득표율은 각각 1%에 불과했고 이것은 양당이 서로 상대방의 손해는 직접적으로 나의 이익이며 그 역도 성립한다는 제로섬적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양 김씨의 경쟁관계가 존재할 뿐 아니라 그 결과 민주당과 평민당이라는 가시적인 분당이 이루어졌음이 표로 나타나는 지역감정을 단기간 내에 강화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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