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와 사생활권 공존의 길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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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최근 서울의 어느 법원이 기자들에게 구속영장 열람을 금지시킨 조치로 인해 촉발되었던 법원과 언론간 파동은 법원이 며칠만에 금지조치를 철회함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그 파동은 표면상으로는 구속영장 열람의 가부를 둘러싼 법원과 언론간의 자존심싸움(?)같아 보이지만 그 내면과 핵심에는 국민의 알 권리와 국민의 사생활권이라는 두 권리의 충돌, 그로 인한 논쟁의 양상이 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알 권리와 사생활권(이른바 프라이버시권)은 모두 산업사회·정보화사회·자유언론사회의 도래로 생겨난 권리이며, 그래서 두 권리는 모두 헌법과 관계법령에 의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선언, 보장되어있으며 이제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되어있다.

<두 권리 모두 기본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권리들은 그 충돌이 필연적이며, 따라서 운명적이기도 하다.
알 권리는 권력의 언론통제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출발하여 이를 방해·간섭하는 국가기관의 작용을 배제할 것을 요구하는 자유권인 동시에 국가기관에 대하여 보유하고있는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는 사회권의 성격도 갖고있다.
또 알 권리는 국민개개인의 기본권이지만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복무하는 언론(매체)의 권리이며 따라서 언론매체는 알 권리의 전제인 정보의 자유를 기초로 정보원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까지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알 권리도 다른 기본권이 그러하듯 절대·무제한의 권리는 아니다.
특히 언론매체에 의하여 담당되는 알 권리의 행사는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와의 충돌을 빚게 마련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언론의 보도·공개로 인한 명예훼손, 사생활의 침해는 숙명적인 것이다.
본디 사생활권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 사생활을 공개 당하지 않을 권리, 사생활의 자유로운 형성·발전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 자기에 관한 정보를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다.

<명예훼손논쟁 필연>
특히 알 권리의 행사는 피의자의 인권과의 충돌 때엔 문제의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국민은 누구나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를 실효성 있게 보장하는 장치의 하나로 수사기관이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 자체가 범죄로 금지되어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이 죄의 주체는 아니나 법원도 무죄추정을 받은 피의자의 인권, 구체적으로는 피의사실이 보도·공개됨으로써 침해될 여지가 있는 사생활권의 보호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번 파동에서 법원이 이러한 논리를 제시한 것은 논리상으로는 정당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언론이 구속영장 열람금지조치가 국민의 알 권리 침해라고 항변한 것도 논리상으로는 정당하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실제영역에서 두 가지 권리의 충돌 때 모순을 해결하는 길은 무엇인가.

<한쪽 우선 해결 안돼>
알 권리와 사생활권이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어내고 그 범위를 발전시켜온 서구에서는 개인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포기한 경우엔 프라이버시권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자는 포기이론, 정치인·연예인 등 이른바 「공적인물」에 대해서는 사생활권이 제한된다는 공적이론, 국민의 알 권리의 정당한 대상이 되고 보도적·교육적·계몽적 가치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알 권리가 우선한다는 공익이론 등이 제시되어있고 법원의 판례로 기준이 정립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은 암중모색의 단계인 것 같다.
이번 파동처럼 논쟁의 당사자가 두 가지 권리 중 어느 하나의 권리를 우선해야 한다는 평행선적 논리는 어느 일방이 그 논리를 철회하지 않는 한 현실영역에서 아무런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번 파동이 의미 있고 생산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가 지금부터라도 알 권리와 사생활권의 충돌을 조절하고 공존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을 성찰·모색해야할 것이다.
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죄에 관해 공익을 목적으로 한 경우 불가벌로 한 것도 그 해결의 시도일 수 있고, 정보공개법 제정도 방법일수 있을 것이다.
이번 파동은 우리사회에 이런 과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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