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공황이 주가폭락 부른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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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권이양기에 나타나고 있는 주가 속락사태는 투자자들이 갖고 있는 불안심리를 반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경기는 아직 침체국면이 아니며,거품 경제가 진정되는 과정의 고통을 극복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황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전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왜 증시를 떠나고 있는가. 연초 자본시장 개방과 함께 우리나라 주식거래에 참여했던 외국인들은 왜 등을 돌리는가. 이미 주가지수는 지난 89년 봄의 사상 최고치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까지 폭락했다. 정부가 증시안정대책의 일환으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3개 투자신탁회사에 대한 특별금융을 약속했고 세금우대 새 상품도 내놓았으나 증시는 반짝 장세로 끝났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또 새로운 부양대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는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서 임기응변적인 증시대책을 마련하려는 어떤 의도에 대해서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강력한 경제안정정책의 결과 수반되는 자금난,고금리 등에 대해 『환자를 고치기 위해 투약할 때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부작용이 겁나서 처방을 바꾼다면 이는 결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작년말부터 총수요관리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논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정부의 총수요관리가 어느 정도의 일관성과 강도를 갖는 것이며 실물경제의 흐름을 충분히 감안해서 추진되고 있느냐에 대해 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주요 공산품들의 수출과 내수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재고는 산더미처럼 쌓여 기업의 자금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증시침체는 직접금융을 조달할 돈줄을 거의 차단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소·중견 기업 이외에도 상장사들의 부도와 도산이 줄을 잇고 있어 주가의 밑바탕이 되는 재료란 현재로서는 없는 상태다.
경제에 가장 관심이 많은 것처럼 선전해 왔던 각 정당의 대표들은 여전히 14대국회의 원구성에도 이르지 못해,이런 정치불안 상태에서는 어느 정치가도 믿을 수 없다는 투자자들의 실망과 불신이 증시를 더욱 누르고 있다. 정가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외국인의 대한투자 위험도를 높여주는 악재임을 직시해야 한다.
증시 회복을 위해서는 정부의 총수요정책이 실물경제의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면서 과열성장의 부작용이 제거되도록 해야 한다. 6공정권이 출범할때 공약했던 증시인구 저변확대를 위해서도 정부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된다. 확실한 증시 부양책은 경제정책에 대한 정치권이나 정부의 신뢰성 회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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