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다다시의 와인의 기쁨 [8]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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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29면

클레오파트라에 견줄 만큼 부드럽고 우아한 ‘샤토 마고 2004’.

지난 일요일 모 와인 숍에서 ‘2004년 샤토 마고 시음회를 엽니다’라는 안내장이 날아왔다. 남동생과 나, 우리 둘은 무의식적으로 “오, 2004년 마고다!”라고 환성을 질렀지만 원고 마감을 앞둔 때라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아아, 아까워라….

포도 훔쳐 따먹던 추억의 포도밭

‘샤토 마고’는 5대 샤토 가운데 하나로, ‘신의 물방울’에서는 클레오파트라에 견주었을 만큼 부드럽고 우아한 맛이 특징이다. 물론 우리 남매의 보르도 와인 편애 리스트에도 베스트 3에 올라가 있지만, 특히 2004년산은 유난히 정이 간다. 2004년 마고에 쓰인 포도는 우리가 프랑스로 취재 여행을 갔을 때 한창 수확하고 있던 ‘추억의 포도’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새는데, 2004년 프랑스 취재 때 우리는 샤토를 잘 아는 수완 좋은 코디네이터에게 현지 안내를 부탁했다. 그의 이름은 무슈 스도. 와인에 빠져든 바람에 인생 항로가 바뀌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프랑스에 정착해 있었다는 인물이다. 무슈(우리 남매는 그를 그렇게 부른다)와 우리는 이 취재를 통해 친해졌고, 그가 일본에서 여는 ‘초절(超絶) 와인회’에도 참석하고 있다. 이 와인 모임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싶지만 훗날로 미루고 다시 보르도 취재로 돌아가겠다.

무슈의 안내로 우리는 지롱드강의 오른쪽과 왼쪽의 많은 샤토를 방문했다. 가능하면 1급 샤토도 취재하고 싶었지만 취재와 견학을 허가해 준 곳은 홍보 활동에 힘쓰는 무통뿐이고, 다른 샤토는 방문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고의 포도밭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무슈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가지가 휘도록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렁주렁 열린 ‘샤토 마고’의 포도밭은 그야말로 온통 자갈밭이었다. 땅속 깊은 곳까지 분포해 있는 이 자갈이 마고가 가진 테루아르의 장점이다. 배수가 탁월하기에 그 향기롭고 맛있는 와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빼어난 자갈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동안 무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자 포도나무 울타리 밑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없게도 무슈는 쭈그리고 앉아 마고의 포도를 훔쳐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괜찮아요, 프랑스인은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아요. 자, 아기도 먹어요. 씨까지 같이 먹어 보면 어떤 와인이 될지 예상할 수 있어요”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그래서 우리도 웅크리고 앉아 몰래 포도를 먹어 봤다. 마고의 포도는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환상적이며, 껍질도 적당히 도톰하고 씨는 호두처럼 리치한 맛이 났다. 씨가 너무 떫으면 타닌(떫은맛)이 강해져 마시기 불편한 와인이 되고 만다.

척박하다는 2004년이지만 ‘샤토 마고’는 분명 환상적인 와인이 될 것이다. 그 포도밭의 포도처럼 향긋한 과일맛과 정돈된 신맛, 달콤하고 리치한 타닌이 어우러진 근사한 와인…. 프랑스에서 취재하던 날들을 추억하면서 그것을 맛볼 날이 언제쯤 올지 손꼽아 기다려 본다. 번역 설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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