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용인이 웬말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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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산당 결성을 막을 수 없다는 정주영국민당대표의 발언은 일정한 계산을 지닌 의도된 것인가,단순 실언성 발언인가. 우리는 공당의 대표요,대통령후보인 정씨가 공식석상에서 이런 말을 한 까닭과 저의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표가 나올성싶으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온갖 허황한 공약도 마다 않는 것이 우리 정계의 오랜 생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이 발언도 일정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공산당 허용이 법에도,국민정서에도 맞지 않을뿐 아니라 그의 선거운동에도 도움을 줄 것 같지 않다는 상식에 비춰 보면 그의 발언은 실언이 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더욱이 그가 팔순 가까운 고령이고 곧잘 즉흥적 발언을 해온 것을 보면 신중한 고려없이 나온 실언일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본심이든,실언이든 정씨의 이 발언은 경솔·무책임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정말 우리나라에는 사상과 결사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공산당 결성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헌법에 대한 무지에서 나왔거나 우리의 현실여건을 도외시한 발상일 수 밖에 없다. 우리 헌법은 정당설립의 전제조건으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아야 함을 명시함으로써 공산당 설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정씨가 만약 비폭력·의회주의를 표방하는 서구형 공산당을 염두에 두고 헌법을 극히 진보적으로 해석해 그런 공산당은 허용될 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우리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안이한 발상이다. 도대체 한반도에 있는 공산당의 실체가 어떤 것인가. 그리고 남한에 존재하는 소수 좌경세력과 그 뇌동세력의 실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오늘의 남북한관계는 대화와 대결의 양면을 함께 갖고 있다. 우리로서는 온갖 방법으로 대화를 넓히고 대결을 줄이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3당의 당수요,대통령후보라는 지도자가 북에 대결쪽의 승산을 오신케 할지도 모를 발언을 해서 좋은 것인가. 남북회담에서 북측이 당신쪽의 정씨도 그런 주장을 하는데 왜 공산당을 허용않고 보안법을 폐지않느냐고 나올게 뻔하지 않은가. 또 우리안에서도 그의 말을 빌려 공산당을 허용하라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나올 가능성은 없겠는가.
정씨가 이런 뻔히 내다보이는 파급을 생각 못했다면 그것대로 문제고,예상하고도 그런 말을 했다면 더 큰 문제다.
우리는 정씨의 이번 발언이 대선증후군의 하나가 아니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진보적 젊은층의 인기를 노린데서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표가 나올성 하면 무슨 말이라도 하고,화제를 일으키고 주목받기를 능사로 생각하는 오랜 정치증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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