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YS 밀월시대로/밀어주고… 당겨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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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선전략·인사에 “한마음 한뜻”/선거자금 문제선 마찰 소지도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민자당대통령후보의 관계가 뒤늦게 밀월의 단꿈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2년여 대권후보를 놓고 벌인 두사람의 치열한 쟁투를 생각하면 『늦바람이 무섭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청와대 참모들간에는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너무 일찍 넘겨주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상도동측에선 『개가해간 어머니를 보는 심정』이란 푸념이 들린다.
○…요즘 청와대 주변에선 『YS가 노 대통령에게 이렇게 잘 할줄은 몰랐다』는 찬탄 반,후회 반의 표현이 부쩍 늘고 있다. YS에게 후계를 물려줘서는 절대 안된다고 했던 대통령 친인척과 일부 참모들은 물론 YS에게 주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던 참모에 이르기까지 그저 안도의 숨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핵심은 YS가 그전보다 훨씬 더 노 대통령의 말과 의견에 고분고분 하다는 점이다. 특히 인사와 대선전략에 관한 충고에 노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 주어 후보가 되기만 하면 레임덕의 대통령을 쥐고 흔들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던 여러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후보선출 직후에 단행된 민자당 당직개편 같은 것이다. 겉으로는 김 후보의 구상에 노 대통령이 동의한 것으로 돼있지만 내막적으로는 노 대통령이 천거한 김영구사무총장을 김 후보가 거부하면 어떡하나 해서 청와대는 적지않게 조바심을 냈었다. 최악의 경우 2,3일의 실랑이까지 각오했으나 YS는 흔쾌히 받아들었다.
또 김 후보의 최측근인 김덕룡의원을 총재비서실장에 임명할때도 마찬가지였다. 김 의원은 처음 총재비서실장을 고사했었다. 김 후보를 위해서 곁에서 해야할 일이 태산같은데 시간뺏기는 의전행사가 태반인 총재비서실장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취지에서 였다.
그러나 김후보는 노 대통령이 김 의원을 직접 고른 사실을 듣고 단 한마디의 이견도 제시하지 않고 『노 대통령이 원하면 데려다 쓰라』고 동의했다. YS의 이같은 태도에 부쩍 고무된 노 대통령은 즉각 후보경선기간중 중단했던 주례회동을 재개하고 김 후보 대통령만들기 진용구축에 우정어린 충고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김 후보의 비서진을 보강토록 권유했다. 또 홍보·정책·조직으로 이루어진 대선기획위 구성에 유의할 점 등을 가르쳐 주고 정부·여당내의 인적 자원을 최대한 YS중심으로 활용하도록 배려했다. 최창윤공보처장관을 비서실장에,손주환 전정무수석을 공보처장관에 앉힌 것은 한 예에 속한다.
노 대통령은 선거분위기를 조기과열시킬 필요가 없고 특별히 개각요인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개각은 이 정도로 했지만 김 후보가 총재직을 이어받는 8월께엔 김 후보가 원하는 대선팀으로 대폭 개각을 하겠다는 언질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노·YS간의 이같은 밀월에도 불구,두 사람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분야에서 앞으로 갈등과 마찰음이 일어날 소지는 여전히 있다. 김 후보가 노 대통령에게 깍듯이 하는 것은 노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김 후보를 도와줄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금과 인사,정책면에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열매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도 가장 민감한 대목이 선거자금이다. 자금은 조성과 용처가 모두 은밀하고 설사 그것이 문제가 되더라도 공개적으로 다툼을 벌이기 어려운 점을 갖고 있다.
먼저 김 후보로서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노태우후보에게 해준 만큼 지원해줄 것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전 전대통령만큼 해주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전 전대통령은 수직적 관계에서 노 대통령을 「만들어낸다」는 신념에서 돈을 모으는데 힘과 열의를 온통 쏟아 부었다. 전 전대통령이 노 후보에게 얼마를 주었고 대선자금으로 얼마를 썼는지 YS자신이 전 전대통령에게 직·간접으로 들어 다 알고 있다.
김 후보가 지난 총선패배후 『당이 무슨 책임이 있느냐』고 말한데는 『청와대가 자금을 얼마나 만들어 주었다고…』라는 의미가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때문에 노 대통령이 아무리 김 후보를 위하는 마음이 크더라도 구체적인 자금조성과 지원이 부실하거나 기대치이하이면 원만한 관계가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마찬가지로 YS가 노 대통령에게 퇴임후를 보장한다는 신뢰를 주지못하면 거기에도 함정은 있다.
이밖에 임기말의 대통령을 섭섭하게 할 일이나 확실한 승리를 갈구하는 대통령후보에게 불만을 유발할 수 있는 사안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서로가 자기의 욕심과 기준에서 상대방이 해주는 보상적 행위에 만족하려면 뼈를 깎는 자중자애와 희생이 불가피할 것이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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