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토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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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어의 포비어(Phobia)는 공포증을 뜻한다. 이 단어는 이따금 방송에서도 쓰인다. 가령 마이크나 카메라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면 카메라 포비어,마이크 포비어라고 한다. 또 무대나 연단에 서기를 싫어하면 스테이지 포비어라고 부른다.
이런 증세가 있는 사람을 억지로 방송에 끌어내봤자 방송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공연히 표정이 굳어지고,마이크앞에 서기만 하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입이 얼어붙기 때문이다. 이같은 방송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부득이 방송에 출연하게 되는 경우 방송관계자들은 『절대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의식하지 말라』고 되풀이해 당부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라도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방송에 출연하면 누구나 긴장하게 마련이다. 라디오의 경우엔 원고를 써서 읽기라도 한다지만 행동이나 표정 하나 하나가 화면에 그래도 비쳐지는 TV의 경우엔 그럴수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긴장하게 된다.
방송에 나가기 싫어도,방송 그 자체를 싫어해도 어쩔수 없이 방송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곧 정치인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몇차례의 선거를 통해 입증된바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 여러나라에서 선거에 미치는 방송,특히 TV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래서 웬만한 정치인이면 휘하에 방송대책팀을 두어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옷차림·표정·말버릇에서 분장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연구하고 조언한다.
케네디와 닉슨이 맞붙은 60년의 미국 대통령선거는 TV토론이 케네디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케네디가 마치 신경이 없는 사람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던 반면,닉슨은 긴장해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때로는 병자를 연상케할 정도로 창백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것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케네디를 지지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끼리 TV토론을 갖자는 야당후보의 제의에 대해 여당쪽에서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각 후보들이 TV토론에 어떻게 임할 것인지,그것이 당락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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