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40∼60%가 노후(국립보건원: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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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몇년째 예산요구 번번이 묵살/측정기 25종 모두 바꿀때 지나/한해 2만건 검사… “믿어도 되나” 의문
국민건강의 유해도를 측정하는 국립보건원의 검사장비는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인가.
그러나 노후율 40∼60%라는 자체조사결과는 이번 징코민 메틸알코올성분 검출사건의 초점이 되고 있는 업체와의 유착·비리 등 인적자원의 도덕성이나 검사장비를 다루는 숙련도 못지않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징코민파동때 관계자들은 『국립의료원의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가 소보원 것보다 성능이 훨씬 우수하고 인력도 탁월하다』고 장관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소비자보호원의 장비는 문제의 메틸알콜성분을 3PPM의 작은 농도까지 잡아낸 반면 국립보건원 장비는 미세한 농도를 검출해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내부감사에서 장비의 성능에 대한 재검토가 핵심사항 가운데 하나로 주목되고 있다.
보사부 관계자들은 국립보건원이 갖고 있는 미 휴렛팩커드사 제품이 메틸알콜 등 시험대상 물질의 양·성분을 모두 측정할 수 있는,즉 정량·정성분석이 가능하지만 검출한계로 보면 소비자보호원의 가스크로마토그래피보다 뒤떨어지는 면이 있음을 시인했다.
이같은 검사장비의 민감도가 떨어지는 것은 기기선정이 잘못됐거나 노후한 때문이지만 그보다 근본적 문제는 예산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부기관중 예산을 풍족하게 배정받는 곳은 없지만 특히 보사부 입장에서는 복지예산부문에 치중하다보니 눈에 띄지않는 국립보건원 등 산하기관 장비대체 예산엔 상대적으로 인색하다는 점이 지적된다는 것이다.
국립보건원의 한 관계자는 『장비중 40∼60%가 평균 내구연한인 6∼7년을 넘겨 기계에 매우 민감한 물질을 검출할 경우엔 오류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약품 검정시험에 쓰이는 장비만 보더라도 아미노산 자동측정기 등 25종을 모두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보사부와 국립보건원은 벌써 몇년전부터 『낡은 기계를 속히 바꿔야 한다』며 예산증액을 요청했으나 대부분 묵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립보건원 관계자들은 『낡은 장비가 속을 썩이는데다 인원이 부족해 국가검정업무를 하기에도 벅차다』며 『그런데도 식품·제약업계에서 맡겨오는 규격기준검사가 매년 2만건에 육박해 철저한 검사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점으로 국립보건원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는 달리 정밀검사분석기술의 개발 등 창의적인 업무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장비가 낡은 것도 문제지만 최고의 권위를 지녀야할 국립보건원의 위상정립을 위해 첨단장비를 변변히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지나칠 수 없다.
적은 양의 칼슘·나트륨 등 미네럴까지 검출할 수 있는 「미량무기물질 정밀분석기」(ICP),가스크로마토그래피(GC)보다 더 정밀분석이 가능한 「질량분석계」(GC­MASS)의 도입은 요원한 희망사항이다.
꼭 필요한 첨단장비가 많은데도 예산당국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원인중 하나는 국립보건원 내부의 「할거주의」때문에 함께 쓸 수 있는 장비조차 따로따로 청구하는 사례가 적지않은 점도 지적되고 있다.<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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