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노량해전 전쟁|"위장사망 가능성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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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순신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한것이 아니라 죽음을 위장하고 어딘가에 숨어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이 한 재야연구가에 의해 제기돼 눈길을 끌고있다.
남천우 전 서울대교수(60·물리학)의 최근 저서 『긴 칼 옆에 차고 수루에 홀로 앉아』(수문서관)에서 제시된 이 가설은 월간 『역사산책』6월호에서 특집으로 소개되는등 학계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충무공의 죽음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당시 정치상황이 복잡미묘한데다 충무공이 변덕스러운 성격의 선조에게 미움을사고 있어 전쟁이 끝나면 무사하기 어려웠으리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지만 직접적으로는 전사현장의 상황과 후속조치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남박사가 제시하는 가설의 근거는 첫째 한창 전투 중에 함대 사령관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 주위에 맏아들과 조카 외에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노량해전은 충무공이 두사람과 같은 배를 탄 처음이자 마지막 해전이었다.
둘째는 참모였던 유형이 쓴 행상에서 『예부터 큰 전공을 세운 장수가 만약 조금이라도 그 전공에 합당한 대접을 받을 마음을 갖는다면 대개는 생명을 보존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므로 나는 적이 물러가는 그날에 죽어야 아무 유감도 없겠다』고 이순신이 토로한 일이 있다고 적은 대목이다.
전쟁이 끝나면 선조가 자신을 역적으로 몰아 죽일 것을 예상한 이순신이 주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거나, 혹은 죽음을 위장했을 가능성을 보이는 부분이다.
셋째는 납으로 된 조총의 유탄이 갑옷을 뚫고 다시 가슴을 관통했다는 것은 사실일수 없다는 점이다.
한창 전투중인 동짓달 추운 새벽에 갑옷을 벗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넷째는 죽은지 15년이 지나서 특별한 이유없이 산소를 6백m떨어진 곳으로 이장한 점이다. 실제로 사망한 15년후에 진짜 장례를 치른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남박사는 『비록 거칠고 또 난폭한 허구처럼 보이겠지만 나로서는 무시할수 없는 논거와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하고있다.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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