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쓸쓸함에 대하여 - 비망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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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쓸쓸함에 대하여 - 비망록' - 김경미(1959~ )

그대 쓸쓸함은 그대 강변에 가서 꽃잎 띄워라

내 쓸쓸함은 내 강변에 가서 꽃잎 띄우마

그 꽃잎 얹은 물살들 어디쯤에선가 만나

주황빛 저녁 강변을 날마다 손잡고 걷겠으나

생은 또 다른 강변과 서걱이는 갈대를 키워

끝내 사람으로는 다 하지 못하는 것 있으리라

그리하여 쓸쓸함은 사람보다 더 깊고 오랜 무엇

햇빛이나 바위며 물안개의

세월, 인간을 넘는 풍경

그러자 그 변치 않음에 기대어 무슨 일이든 닥쳐도 좋았다


그대가 옆에 있어도 쓸쓸함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일. 앞 못 보는 바람처럼 와서 부딪히죠. 쓸쓸함은 사랑보다 더 깊고 오랜, 쓸쓸함 고유의 질기디 질긴 유전자를 지녔죠. 지금 사랑에 빠진 그대여, 이제 곧 쓸쓸함이 시나브로 당도할 것이지만 두려워 말아요. 너무 쓸쓸하지는 않게 조금은 쓸쓸하게, 무슨 일이 닥쳐도 그것은 인생! 이제 가죠.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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