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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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이 6자회담을 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북핵 해결책을 찾기 위한 6자회담은 지난 8월 말 베이징(北京)에서 처음 열렸다. 북한은 애초부터 북.미 양국 간에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4년 북.미 기본 합의부터가 북한에 속은 결과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부는 양측 간에 머리를 맞대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양자 대면을 피해가려고 만든 게 6자회담이다. 그런 미국에 중국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중재자다. 더욱이 중국은 북한의 혈맹이며 경제사정이 나쁠 때마다 생명선 역할을 자임해 왔다. 북한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상대가 중국이란 점을 감안할 때 결국 미국이 중국에 외주(外注.아웃 소싱)를 준 결과가 6자회담인 셈이다.

과거의 클린턴 민주당 정부든 지금의 부시 공화당 정부든 간에 미국은 북핵 해결에 있어 베이징의 역할을 중시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의 기여에 감사와 기대를 표명한다. 지난주 원자바오(溫家寶)총리의 백악관 방문 때도 그랬다. 게다가 중국이 무척 예민하게 생각하는 대만문제에서 부시가 베이징의 손을 들어주었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兩岸)관계에서 워싱턴이 견지해 온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한 것이라는 의구심을 불러온 제스처였다. 그 와중에 우리는 21세기 미국과 상대할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중국이 북한 다루기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된 역설(逆說)을 보고 있다. 50년 전 한반도를 반쪽으로 갈라놓은 정전협정에 참여했던 두 나라가 한반도 장래를 좌우할 회담에 또다시 주역으로 등장한, 왠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상황을 우리는 맞고 있다.

이같은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우리는 6자회담의 뜻을 새겨봐야 한다. 핵문제가 급해 관련국들을 불러들였고 어차피 한반도 안보와 지역안정을 얘기할 때 참여할 상대들이 모두 모여든 꼴이지만 이들 생각은 제각각이다. 그래도 워싱턴.베이징, 그리고 평양과의 관계에서 우리 입장을 정리하는 게 6자회담 방정식 풀이의 핵심이다. 그리고 해법의 요령은 미.중 양국 사이에서 우리가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을 가급적 줄이는 데 있다. 아울러 북한을 좀더 객관화시켜 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반세기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를 절대불변으로 당연시하며 관리에 소홀했다. 게다가 북한이란 동족의 존재가 주변을 보는 우리의 시계를 흐려놓고 있다. 또 민족공조의 구호가 수시로 우리의 판단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반미(反美)가 반핵(反核) 목소리를 잠재우고 중국의 거친 탈북자 처리에 우리가 큰소리를 내지 못한다.

게다가 북한에 까탈스런 미국이 북핵보다 한반도 안정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남쪽에 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장래에 대한 중국의 위협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6자회담의 흐름만 봐도 그렇다. 미국이 회담의 장애물로 비춰진다. 대조적으로 중국은 우리와 한편에 서서 회담을 성사시키려 애쓰는 상대로 부각된다. 게다가 북한을 상대로 한 5대 1의 구도로 6자회담을 몰아가는 워싱턴에 우리가 선뜻 기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게 우리의 입장일 수는 있어도 북측의 핵 보유가 기정 사실화됐다고 해서 별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한국이다. 그런 한계 때문이라도 워싱턴과 베이징을 보는 우리 눈매에 각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 못지않게 북핵 이후의 한반도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6자회담이 북핵 해법찾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길정우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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