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위주로 돌아선 일 노조/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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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일본의 노동운동이 큰 전기를 맞고 있다. 노조가 자신들의 최대무기인 파업권을 스스로 포기하는가 하면 자의대 인정은 물론 해외파병까지 지지하고 나서는 형편이다. 지난 3월 일본 교원노조는 강령에서 파업권을 삭제했다. 일장기 게양 및 기미가요(국가) 제창을 거부하며 일관되게 좌익노선을 걸어오던 교원노조가 파업권을 포기한 것은 더이상 이념에 매달렸다가는 존립자체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교원노조의 가입률은 현재 35% 수준이다. 그러나 신규채용교사의 경우 가입률은 10%도 안된다. 따라서 교원노조는 이념을 버리고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교원노조는 교사의 파업금지규정때문에 사단법인으로의 등록이 불가능,많은 경제적 불이익을 당했다. 이에 따라 파업권을 포기,강성 이미지를 버리고 법인세 경감 등 경제적 이익도 꾀하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는 자위대와 미 일 안보체제를 인정키로 했다. 또 자위대원이 휴직하는 형태로 유엔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것도 인정하기로 했다.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는 사회당의 지지기반으로 전후 줄곧 좌익노선을 걸어왔었다. 지난 18일에는 일본철도 노동조합연합회(JR연합)가 새로 발족했다. 일본철도 노동조합의 전국적인 JR소렌(총연)과노선차이로 대립하던 10개 단위노조가 JR소렌과 결별,새로운 산업별 조직인 JR렌고(연합)를 결성한 것이다. 조합원은 7만5천명으로 JR소렌의 7만6천명과 필적하는 수준이다. JR소렌은 지난 3월31일 13년만에 처음으로 48시간동안 시한부 파업에 들어갔다. 이 파업은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격렬한 비난을 받은 끝에 파업 5시간만에 중단 해야만 했다. 이는 JR소렌의 결정적 실책으로 JR렌고 결성의 길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노조는 『약자인 근로자가 단결,보다 나은 생활을 마련한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일본노조의 행동변화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어느 일본인의 말이 실감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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