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피아노 연주 접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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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태생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70)가 더 이상 피아니스트로 공개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탈리아에서 발행되는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최근 인터뷰에서다. 2001년 체코 필하모닉 내한공연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7번을 건반 위에서 지휘한 것이 피아니스트로서의 마지막 내한 무대가 되고 말았다.

아슈케나지는 코리에레 기자에게 자세한 이유를 밝히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약간의 '신체적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을 펴보였다. 기자는 관절염 때문에 기형이 된 손가락 3개를 발견했다.

아슈케나지가 마지막으로 공개 연주회를 한 것은 1년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손가락 통증이 심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만족할만한 연주를 들려주진 못했다. 코리에레 보도에 따르면, 아슈케나지는 몇달 전 공개 연주회 중단을 결심했다. 하지만 스튜디오 녹음은 계속할 계획이다. 불만스러운 부분을 다시 녹음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는 클라리넷을 전공한 아들과 함께 하는 듀오 앨범과 시벨리우스 독주곡집을 녹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피아니스트로 활동해오면서 아쉬웠던 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손가락이 작아서 리스트의 'B단조 소나타'에 도전해 보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아슈케나지는 구 소련 고르키에서 태어나 1963년 아이슬랜드로 망명했다. 1955년 쇼팽 콩쿠르 2위 입상에 이어 1956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962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79년부터 2000년 사이에 독주와 실내악 음반으로 그래미상만 무려 다섯 차례 수상했다.

아슈케나지는 인삼을 즐겨먹는 '친한파'. 그가 첫 내한공연을 한 것은 1965년. 그후 1977년, 1985년, 1995년, 1998년에 각각 서울에서 독주회를 했다. 1998년에는 IMF 외환위기로 외국 아티스트와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는 우울한 상황에서 예년 개런티(5만 달러)의 20%에 불과한 1500만원만 받고 한국팬들을 찾아와 훈훈한 감동을 준 바 있다.

건반 위에서 못다 피운 그의 음악적 열정은 지휘대 위에서는 더욱 타오를 것이다. 1980년대부터 지휘대에 서기 시작한 그는 1987~94년 로열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 1989~1999년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수석 지휘자, 1998~2003년 체코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 2004~2007년 NHK 교향악단 음악감독을 거쳐 현재 유럽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있다. 2009년부터는 시드니 심포니 수석 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1996년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2001년 체코 필하모닉, 2006년 NHK 교향악단을 이끌고 서울 무대를 찾은 바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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