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조승희 그리고 한나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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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나라당이 맥없이 패배했다. 그 당의 두 후보 지지율이 70%나 된다던데 그 인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그 인기는 반사적인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신물을 내던 국민은 그들을 응징하고 싶었다. 그 마음의 결집이 지금까지의 선거 결과였다. 이번은 달랐다. 응징 대상이 빠졌다. 비로소 사람들은 한나라당의 실체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으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꿈을 말하지 않았다. 희망을 보여주지 않았다. 두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이 미국으로 하여금 인종차별을 폐지케 하는 힘이 되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정치에서 꿈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그의 자서전은 '나의 아버지가 준 꿈들'이고 저서는 '희망이 주는 대담함'이다. 그는 세세한 정책을 말하지 않는다. 미국이 가졌던 꿈과 가치를 회복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희망과 꿈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선두그룹 후보가 되었다. 한나라당 두 후보는 무슨 꿈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무슨 희망을 던져 주고 있는가. 운하를 만들고, 열차나 선박으로 동북아를 연결하겠다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것이 꿈이고 희망인가. 아니다. 그것은 건설사업이고, 교통관광 프로젝트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2005년 1만2000명이 자살했다. 매일 30명씩 자기 목숨을 끊는 나라다. 10년 전에 비해 세 배, 5년 전에 비해 두 배가 늘었다. 조승희처럼 절망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들에게 조그만 꿈이 있었다면 목숨은 끊지 않았을 것이다. 자녀 교육 걱정에 짓눌려 사는 학부모의 마음을 아는가.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을 하지 못해 좌절하고 있는 젊은이의 마음을 아는가. 결혼하고 10년이 지났는데 내 집 가질 가능성이 점점 멀어져 가는 젊은 부부의 허탈함을 아는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무슨 꿈을 갖고 살아야 하는가.

한나라당은 돈 공천, 줄서기에 눈이 멀었다. 그 당에 들어가면 늙은이나 젊은이나 왜 그렇게 똑같아지는가. 두 후보는 세력 모으기에 바쁘다. 당권을 놓고 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 대통령은 권력욕의 화신을 뽑는 건가? 꿈은 없고 이벤트뿐이다. 머리를 풀었다 올렸다 하고, 풀빵을 굽는다고 사람 마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도 한나라당밖에는 대안이 없지 않은가"라는 말을 이제부터는 하지 말라. 그런 마음들이 그들을 오만하게 만들었다. 한나라당만 차지하면, 그 당 공천만 받으면 대선은 이긴다? 썩은 동아줄 잡고 하늘을 오르려는 불쌍한 오누이여….

새 바람이 불어야 한다. 대선이 이런 식이라면 나라의 비극이다. 김정일에게 나라 갖다 바치지 않고, 민족통일 운운하며 국민 기만하지 않고, 고향 선배 선생님 어쩌고 하며 지역주의에 매달리지 않고,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갈라놓아 미움 키우지 않는 사람이면 누가 돼도 좋다.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나라의 꿈을 믿고 개인의 꿈을 키워 가게 만드는 그런 사람을 기다린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