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한국판 마니폴리테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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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기자회견과 검찰 자진출두에 대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본격적인 정치개혁의 계기"라며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윤태영(尹太瀛)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진실을 밝힐 것으로 안다"며 "이것이 정치개혁과 선거개혁의 큰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짤막하게 논평했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의 한 정무관계자는 "당시 대선 후보로서 조사받겠다는 자세는 평가하지만 검찰에서 조사를 받겠다고 하면서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5백억원가량이라고 스스로 예단한 것은 부적절한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대선 후보가 구체적 자금내역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상식"이라며 "이미 4대 기업에서 한나라당이 5백억여원을 수수한 사실이 밝혀진 마당에 李전총재가 5백억원이라고 단정한 것은 이 선에서 끝내자는 얘기로도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라며 "때문에 李전총재가 진심으로 진상 규명을 원한다면 당시 측근 의원, 재정 관계자들로 하여금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케 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이평수 공보실장은 "한나라당은 SK 불법 비자금 1백억원이 드러난 이후 무려 두달여 동안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고 재정 담당자 도주, 자료 폐기, 소환 불응 등으로 대한민국 검찰의 수사력을 시험해 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李전총재가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지금에야 자인한 것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는 얘기다. 李실장은 "당연한 일이었던 李전총재의 검찰 출두로 한나라당의 충격적 불법자금 수수에 대한 진상 규명 작업과 한국판 마니폴리테가 시작된 만큼 철저한 진상 규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채(鄭東采)홍보위원장은 "李전총재의 기자회견 등은 도의적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본다"며 "엄격한 사법적.법률적 판단으로 진실을 가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같은 당의 박병석(朴炳錫)의원은 "이를 계기로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李전총재의 결단은 평가하나 불법자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李전총재의 기자회견을 오히려 그의 정계복귀 가능성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정계 은퇴를 한 전 야당지도자의 자성문이 아니라 정계 복귀를 위한 선언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李전총재의 회견이 전날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 이상이면 대통령직을 걸겠다'는 盧대통령의 발언 직후 나온 점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대선 당시 맞상대였던 盧대통령에 대한 배수의 진을 치면서 기존 지지자들의 동정심을 응집시켜 정계 복귀, 한나라당 재접수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었다.

최훈.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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